Chiangmai +8+
치앙마이에서 본 눈입니다.
"빅 웨일이요."
눈을 보며 떠올렸다.
직접 본 적은 없는 깊은 바닷속 고래 눈.
하와이에서 산 엽서에 고래 눈이 있었다.
8마리의 고래, 그 중앙에 푸른 눈.
그 카드의 이름은 Whale song이다.
말해놓고 적절했을까. 순간 흠칫했다. 혹시 고래 안 좋아하실 수도 있으니.
Anju 씨는 아, 그래요. 했다. 왜 고래가 떠올랐니. 이런 질문도 없었다.
가만히 깜빡. 깜빡.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 편안한 느낌이다.
이 눈은 잠시 영상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눈 주변이 우리는 요렇게 좀 거무스레해요. 인도 사람 다 비슷하게 이래.
좋고 나쁘고 그런 거 없는 얼굴 표정이다. 그냥 그렇다고. 하는 담백한 묘사. 그게 끝이다.
나도 고래.. 를 내뱉고는 딱히 다른 말을 안 했는데
인도 사람들은 눈이 참 예뻐요. 그 말은 했던 것 같다.
'안주' 씨는 내가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보낸 맨션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
지나다니며 가끔 인사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눈 이야기들은 이런 거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인지, 오늘 뭘 먹을 건지
글에 대한 관심, 뭘 쓰고 있는지,
이곳에서 누구를 만났고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이야기,
과거 인도 공주가 한국에 온 역사(가야 김수로 왕과 결혼),
인도 타밀어와 한국어의 유사점,
그리고
지금의 몸 상태(폐암으로 치료 중이심).
다 '지금'에서 관심 있거나 흥미 있는 이야기다.
정작 과거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심지어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 날 알게 되었다.
이분의 이름. '안주'
술 먹을 때 함께 오는 음식.이라고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풀어주셨다.
미국에 사시는데 주변에 한국인 지인이 꽤 있으신 모양이다.
까먹기도 어려운 이름이다. 안주.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초반에 모르고 난 아무 데서나 시작하면 된다고 그냥 쓰시라고... 하는 충격적 조언? 까지 했다.
어디에서 시작해도 의미가 될 이야기로 가득 찬 삶을 사신 분에게. ^^
위키에도 나오는 분이셨다.
정원을 가꾸는 걸 좋아하신다. 손주들 오면 예쁜 그 정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하시다고. 핸드폰에 찍힌 꽃 사진들을 하나씩 보여주시는데 그 색이 모두 예뻤다.
나 오늘 마지막 저녁인데 취소되었어요. 같이 안 먹을래요?
로비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편 지 한 십 오분 됐나 그런데..
정말 갑자기 나타나셔서 내게 말했다.
사실 난 그때 저녁을 먹은 상태였다.
순간 배가 너무 부른데.. 하는 몸의 소리... 그 저항하는 몸의 소리를 들으며 일어섰다.
가볍게 먹겠다고 하고.
마지막이라는 그 말이 벌떡 일어나게 했다.
함께 간 식당에서 고른 녹차 음료가 엄청 달고 맛있었다.
뭘 집어넣은 건지 진짜 신기한 맛이었다.
워싱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신다고 했다.
집에 놀러 오라고 하며 거의 모든 수단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핸드폰에 기록하시는데
인연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매번 편한 복장으로 길에서 마주쳤는데
이날은 전혀 다른 분 같았다.
빨간색 원피스에 조각조각 무늬가 반짝였다.
목, 귀, 코를 빛나게 하는 장신구를 착용하시고
화사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이 눈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웠다.
쓰실 이야기, 책으로 꼭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