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지워진 고양이는 새로운 섬에 도착했다. 이 섬에는 ‘모든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일부가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섬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그러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 그 태초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아무 기억이 없는 고양이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다.
모든 기억을 가지면 고통스럽지 않아?
하루는 고양이가 여자에게 물었다. 찐빵처럼 동그랗고 큰 얼굴을 한 고양이는 여자 근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서핑보드를 모래 위에 놓는다. 돌고래한테 지난 며칠간 맹렬하게 배웠는데 처음 바다에 혼자 나간 것이어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폭죽처럼 터졌다. 심장 뛰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만 같다. 꽃으로 만든 노란 핀을 귀 앞에 야무지게 꽂고 다녔는데 너무 신나게 타서인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홀로그램 노트에 무언가를 적던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파도를 많이도 맞았나 보네.
여자는 자신의 얼굴에 붙은 모래가루를 털며 웃었다. 고양이는 젖은 얼굴을 두 발로 매만지며 새초롬하게 다시 묻는다.
모든 기억을 가지면 고통스럽지 않냐고.
여자는 노트를 덮고 고양이를 다정하게 본다.
넌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구나.
목소리가 의외로 낮고 고요하다. 고양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를 쳐다봤다.
지금부터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줄게. 그게 너의 삶을 허무하게 만들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는 끝까지 들어 보라고. 하긴 넌 과거도 기억을 못 하니 이 개념은 오히려 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여자는 푸른 원석이 반짝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모래를 쓸어 땅을 평평하게 만들더니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눈을 크게 껌뻑이며 여자를 한 번 보고 땅을 내려다보았다. 글자에 무슨 진동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솟아나는 감정에 (여자의 글자를 차마 뭉개지는 못하고) 그 근처 모래판을 발로 탁탁 쳤다.
지척에 한 아이가 모래성을 쌓고 부수기를 반복한다. 하얀 새의 무리가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며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덩치가 큰 개가 정신이 사납도록 꼬리를 흔들어대는 바닷가에서 고양이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존재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