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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 >2<

by Iris K HYUN




오래된 것 중 오래된 것이라면 나를 빼놓을 수 없지.


섬에서 제일 오래 살았다는 거북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쟤는 벌써 배추를 몇 포기나 먹은 지 몰라.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는 남자가 거북이를 빗겨나 고양이처럼 착지하며 말했다. 배추를 우물거리는 거북이 위에 작은 비둘기가 위엄 있게 앉아있다. 가슴을 한껏 내밀고 도도하게. 자태를 보면 비행을 막 마치고 높은 곳에 착지한 매나 독수리 못지않게 먼 시야를 가진 듯하다.


아아ㅏ아아ㅏㅏㅏㅏ 이히히히히 우우우우우ㅜㅜㅜㅜ오오오옹오옴


심장 박동같이 뛰는 북소리 장단에 맞춰 챙이 넓은 깃털 모자를 쓴 나이 든 여인이 동물처럼 소리를 낸다. 그 소리 사이로 다양한 악기가 물결처럼 겹치고 젊은이들이 그 소리에 맞춰 소리를 내고 발을 구르고 움직인다. 소리라기보다 진동에 가까운 그건 고양이의 무언가를 제대로 건드렸다.


야야야야야야 오오오오옹


입을 모아 야무지게 소리를 내니 북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크리스탈로 만든 하얗게 생긴 밥그릇을 문지르니 모래가 사르르 도는 소리가 거품 방울이 되어 공기 중에 그림을 그린다. 우주선 같이 생긴 악기를 끌어안고 물 위에 흐르는 햇빛 조각을 보는 사람 옆에서 고양이는 그가 뒤집어쓴 헤드폰을 발로 한 번씩 치며 갸르릉 거렸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 맛있는 냄새가 실린 연기를 따라가니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고 먹고 마신다. 아이가 울고 웃고 사람들은 흥겹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커다란 스크린이 공중에 펼쳐지고 그 안에는 작은 점들이 머리 위 하늘의 별처럼 수 놓여 있다. 여자가 모래에 쓴 글자는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글자의 진동으로 저 스크린이 펼쳐진 것 같다. 고양이는 머리를 굴려보다가 다시 야야아아아아아아아-오오오오옹 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어쩐 영문이지 알 길이 없어 통통한 볼을 앞발로 가열차게 문지르는데 여자가 고양이에게 그 앞으로 나가보라고 손짓한다.


나?


거센 파도를 맞으며 서핑하던 패기는 어디 가고 쭈뼛쭈뼛 그 앞으로 간다. 왼발 오른발 잘만 걷던 그 걸음이 엇박자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배경이 까맣고 푸르게 변하는 스크린 앞에서 고양이는 어지럽다. 하얗게 그려진 점들이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손.. 아니 발을 뻗어서 확대를 해 봐.


여자가 말한다. 수많은 점 중 하나를 선택했다. 줌-인 줌-인- 입을 오므리고 미간에 힘을 주고 화면을 열심히도 문지른다. 꾹꾹이 발이 좀 더 섬세하면 좋으련만.,.


뭐야. 나잖아?


고양이는 보름달처럼 둥글게 화면을 꽉 채우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래 너네.


여자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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