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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Jun 19. 2024

달과 물고기 (2)


달과 물고기 (1)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하루는 모임에서 20분 쓰기 도전을 하겠다고 했다. 3가지 단어와 1가지 색깔까지 골라서 하라는.. 뭔가 시험 지문 같은 주문에 물고기는 그만 집에 가고 싶어졌다. 급격한 부담이 몰려왔고 무슨 핑계를 대고 나갈까 잠시 궁리했다. 그러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쳐서 참여하게 되었다. 


물고기는 세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mom, water, connected였다. 그리고 색은 블루. 여기까지만도 십분이 지났다. 절반 남은 동안 무슨 정신으로 썼는지 모르게 썼다. 해변과 맞닿은 그곳은 어찔할 정도로 바람소리가 심했다. 우리가 둘러앉은 오두막이 통째로 날아가지는 않을까 할 정도로 거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소리를 배경 삼아 압박감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끼며 적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몰입하면 뭐든 나오는구나 생각했다. 다들 유려하게 쓰는데 나 홀로 초등생이 되어 대학생 백일장에 참가한 느낌이었다. 한국어로 하면 잘 쓸 수 있는데..라고 생각해 보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더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지 않았을까.   



열심히 휘갈긴 이 글에 다른 시공간에 여러 사람이 함께 녹아있다고 느꼈다. 당연히 물고기와 물고기의 엄마도 있겠지만 이 섬에 와서 만난 사람들이 차례로 스쳤다. 특히 바로 이전에 한 사운드 관련 이벤트에서 소리를 지르며 동물처럼 우는 여자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원시적인 북과 악기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맞춰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있기에 다른 이가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들렸다. 우는 사람도 있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고 웃는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이 다 있었는데 물고기는 유독 한 여자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물고기의 아가미에 밧줄을 묶어 사정없이 당기는 느낌이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뛰쳐나가고 싶은 불안감을 느꼈다. 물속에 있는 그 많은 산소를 피로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끊어질 것 같은 숨이 겨우 이어 붙었고 물고기는 눈을 감은 채(마음으로만 감았다. 눈은 어차피 안 감긴다) 여자를 향해 돌아누웠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물고기는 이 글을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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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Blue 


I was lying at the beach just watching the waves of the sea. It comes and goes. It was quiet and peaceful. Everything was so blue and perfect. I was totally in a beautiful spotless scenery.


There was one girl sitting just about 2m away from me. But I hadn't noticed she was there. I even had no idea when she came to me. She was just staring at the sea with silence. All of sudden she started to weep so badly. That was so annoying indeed, distracting me a lot. I sensed that all this blue from the sky and the sea turn into red mixing with her pain and grief. It completely shattered my peace.


I didn't want to approach her since I was so fragile somehow. Honestly I wasn't confident of facing her sorrow which was so overwhelming to me. So I just stayed where I was. It seemed like there was a huge invisible barrier between us.


Out of the blue, I turned my body towards her with eyes closed and took a posture as if a baby in the womb. I don't know the reason why I did. I could not see anything but hear her crying and the sound of the water at the same time.

It sounds weird but I was in my mom's womb at some points. Baby me could feel strongly all anxiety and sadness from her. So I wanted to say like "I'm here. Don't worry. You'll be okay"


The waves of the sea come and go several times more. I feel sea blue again. And I don't hear her crying anymore.  


I know we are connected.


Fish, Koh phangan, 2. July 2019





씨 블루


나는 파도를 바라보며 해변에 누워 있었다. 파도는 오고 간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모든 것은 아주 푸르렀고 완벽했다. 나는 흠잡을 때 없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었다.


불과 2 미터 정도 떨어진 자리에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주 심하게 말이다. 그건 정말이지 나를 짜증 나게 했고 급기야 나의 정신을 마구 흐트러트려 놓았다. 하늘과 바다의 이 모든 푸른색이 그녀의 고통과 슬픔에 섞여 붉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나의 평화로움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나는 약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압도하는 그녀의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내가 있는 그 자리에 그저 머물렀다. 마치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놓여 있는 듯했다.


갑자기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내 몸을 그녀 쪽으로 틀어 마치 자궁 속에 아기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울음과 물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어느 순간 엄마의 자궁 속에 있었다. 태아인 나는 그녀의 모든 불안과 슬픔을 그대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여기 있어요. 걱정 말아요. 당신은 괜찮을 거예요.”


몇 차례 더 파도가 오고 간다. 나는 'Sea blue'를 다시 느낀다. 더 이상 그녀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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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위에서 촘촘하고 밀도 있게 움직이는 여자의 소리, 호흡이 가득 담긴 그 소리는 물고기를 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물고기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아가미를 가득 열어 호흡하며 함께 울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한결 맑아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고 물고기는 아가미로 들어오는 것이 산소가 아닌 듯 답답했다.



물고기는 자신이 펼친 색이 출렁이는 물의 리듬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반응하는 감정의 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척추 뼈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의식하니 다른 리듬을 타도 될 것 같다. 익숙한 물의 리듬에 경직된 아가미는 조금 침착하게 말한다. 



바다는 넓어. 어디로든 이어지고 있다고. 



척추 뼈 마디마디를 느끼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세상을 보려고 하나요? 



달은 물고기에게 물었고 파도는 여유를 품은 사자처럼 소리를 낸다.






코팡안 섬에서 혼자 춤추던 여자








물고기는 북극성으로 가는 길의 끝에 다시 달을 만나기로 했다. 어디에서도 보이는 달이지만 다음에 달을 볼 때는 아가미 사이로 맘껏 산소를 퍼담을 수 있는 그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새로운 물살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간다. 피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전해진다. 반짝반짝해지는 그 느낌이 차오를 때까지 나아간다. 







물공포를 극복하고 기쁨의 부장가아사나

 




펼치기. 끝. 달.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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