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 점성학을 이용해 봅니다. 저의 행성과 별자리를 토대로 캐릭터와 옷을 만들어 입히고 무대에 세웁니다. 행성이 하는 그날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 답을 이어 나가다 보면 종착지에 다다르는데요. 거기에 한 사람의 비전이 새겨져 있는 별이 있다고 하네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가는 여정... 같이 가주실... 건 가요?
나의 북극성을 향해 가는 길, 그 길에 화성 다음으로 만날 행성은 달이다. 지구의 위성이기도 한 달은 우리가 매일밤 하늘에서 가장 쉽게 본다. 달은 태양 빛의 반사로 매일 그 형태를 달리하며 우리 눈에 비친다. 마치 우리의 감정의 주기처럼 익숙하고도 친근한 존재다. 그런데 재밌는 건 우리는 늘 달의 같은 면만 보고 있다. 이건 달이 스스로 한 바퀴 도는 자전과 지구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공전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볼 수 없는 달의 어두운 면은 사실 어두운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관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달과 지구의 관계를 반영한 것인지 점성학에서 달은 무의식을 상징한다. 태양이 의식적, 능동적 자기 발산의 에너지와 비전을 드러낸다면 달은 외부의 영향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감정이나 느낌이다. 이는 태아기 이전부터 만들어진 인간의 내적 형태나 습관적 반응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태양이 아버지라면 달은 어머니의 속성과 닮아있다.
캐릭터(달)+옷(물고기자리): 사람들의 감정, 특히 고통에 대해 민감한 편, 상상과 무의식 탐험을 즐기며 때론 너와 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물고기
+무대: 태국의 코팡안 섬
(캐릭터가 곧 무대이기도 하다)
달이 그날의 무대에 던지는 질문.
0. 나는 어떤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가?
0. 그 상황에서 어떻게 안정을 찾을 수 있는가?
0. 안정을 넘어서 나를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염두하며 물고기는 달 탐사를 떠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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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Koh phangan Island 탐사를 시작하며>
태국의 코팡안이라는 섬에서 잠깐 살았다. 물고기는 그곳에서 매일밤 달을 쳐다보았다. 섬은 풀문 파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정작 파티에는 제대로 참가해 본 적이 없다. 물고기는 당시 큰 의문이 있었다. 엄마가 왜 아팠을까에서 시작된 의문이다. 몸에 특별히 나쁜 것을 하지도 않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게 살았던 사람의 결말치곤 말도 안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마음, 의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하루는 섬에서 만난 네덜란드 여자에게 치네창(Chi Nei Tsang, 氣內臟)이라는 복부 마사지를 배우기로 했다. (복부마사지를 네덜란드어로 치네창이라고 하나? 했던 물고기는 나중에 웃음이 났다. 한자를 보면 내부 장기 에너지(기)인데 그걸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이었다.)
이걸 배운 때는 물고기가 고향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았을 시점이라 몸에 숨겨진 무의식을 보는 모든 작업이 흥미로움 이상이었다. 단순히 배를 꼬옥꼬옥 시원하게 누르면서 릴렉~스~하는 마사지가 아니었다. 물고기에겐 참으로 괴로운 마사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물고기는 이상한 기질이 있는지 그 괴로움에서 다른 관점을 발견할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장기를 쓰담쓰담하며 하나의 감정을 가진 인격체처럼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오만가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과정은 색다른 체험이었고 물고기에게 많은 통찰을 주었다. 물고기는 가끔 자신의 몸을 인지하지 못하고 몸에 닿는 물의 속성으로 자신을 인식했었다. 그런데 몸이 있구나. 별안간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눈이 번쩍 뜨인 거다. 상대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과 의식의 실체를 어렴풋하나마 인지하기 시작했다.
물고기는 날이 갈수록 장기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숨겨졌던 오랜 기억과 감정은 여지를 주자 어제처럼 꿈틀거렸다. 물고기를 이 섬으로 초대한 스위스 물고기와 달밤에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배움을 나누는 것이 충분치 않았다. 게다가 이 무렵 스위스 물고기는 물가에서 만난 프랑스 물고기와 헤어지게 되고 별안간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 상실감으로 감정의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 여파가 뜨거워서 물고기는 몸이 녹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지나가는 물길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달과 물고기>
물고기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물고기인데 물 안에서 글을 쓰는 것이 어딘가 편하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와 꼬리만 담그고 글을 썼다. 죽음을 불사한 열정치고 별 말도 안 되는 단어들만 둥둥 떠다녔고, 엮으려고 치면 자연스럽지 않은 그 느낌에 자주 불쾌해졌다.
그러다 섬에 글 쓰는 물고기들의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저기를 떠돌다 온 물고기들이 가끔 모여 아무렇게나 글을 쓴다고 한다. 물고기는 그곳에 나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모인 물고기들은 뭔가를 쓰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인지 남의 이야기인지 모를 것들이 서로 다른 호흡으로 그곳에서 뒤섞였다. 공통의 언어를 영어로 잡은 것이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나밖에 모르는 한국어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온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온 마음을 열어도 잘 안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 운명적으로 들리는 표현이 온몸을 두드릴 때는 물고기 살이 돋기도 했다.
물고기는 답답함에 꼬리를 퍼덕이면서도 뭐라도 적어보기로 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커버사진; 인도 콜카타 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