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현 Jun 12. 2024

화성에서 온 염소 (2)



점 펼치기 편  >1<  화성




화성에서 온 염소 (1)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같이 갈 사람 있을까?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 염소는 물었다.


두 살 아기를 둘러업은 레베카의 동생(I)과 태국 여자(K)가 동행하겠다고 했다. 좋아. 같이 가자.를 외치고 야심 차게 로비 문을 밀었다. 숨 막히게 더운 바람이 훅 불고 바람보다 더 뜨거운 이집트 사람들의 관심과 눈빛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남자는 네가 책임지고 두 시간 안에 들어오는 거다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드디어 자유다. 


택시가 안 잡히니 마음은 더 초조하다. 신호고 뭐고 없이 막 달리는 차들과 그보다 더 막 달려오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가 궁금하고 염소와 친구들은 도서관 가는 길이 궁금하다.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서 기사는 음악 볼륨을 거의 최대치로 높인 듯하고 담배를 입에 물고 우리를 번갈아 보며 여유를 부린다. 아이가 있으니 담배를 끄고 소리도 좀 낮춰달라고 I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고 아이는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울고 K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아이가 없으면 한판 할 분위기인데 다들 아이 때문에 가까스로 참고 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길도 그 방향이 아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이 미친...xx I는 급기야 도로 한복판에서 내리려고 한다.

염소는 다들 너무 화를 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택시 기사를 잘 구슬려서 어떻게든 목적지에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애는 이 와중에 왜 데리고 와서... 하는 마음도 벌컥 들었지만 최선을 찾아 머리를 굴린다. 어찌 잡은 택시인데.. 차들이 그대로 내달리는 도로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


아이가 아침부터 아픈데 약도 먹여야 하고 빨리 가야 한다. 당신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도와달라. 제발.


뭐 그렇게까지 말할 거 있냐고 I는 염소를 툭 쳤다. K도 창밖을 보며 연신 매캐한 연기만 마신다. 그러나 이 말이 나름 주효했는지 택시는 열심히 도서관을 향해 달렸고 우리는 무려 한 시간 만에 도서관에 닿을 수 있었다.


도서관 매표소 앞에 서니 언제 괴로웠나 싶게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번엔 기쁨의 두근거림이다. 드디어 입장하는구나. 그런데 웬걸 이렇게 어린아이는 입장이 안 된단다. I는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가 있겠다고 한다. 도서관 코앞까지 와서 못 들어가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얼굴이다. 그렇게 K와 입장한 도서관, K는 사진을 찍어주고 한 바퀴 휙 돌더니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염소는 마음이 급하다. 사서로 보이는 직원에게 물었다. 책 기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아니 무슨 문학상을 탄 것도 아닌 개인 에세이 하나 가지고 와서 기증하겠다는 것이 어딘가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안내해 준 곳으로 가기 전에 검색을 해보니 한국책은 정말 얼마 안 되는 데다가 어느 고 천년 된 책들만 나온다. 한글 표기도 소리 나는 대로 영문으로 적어놓았다.

그러나 운이 좋은 염소다. 염소가 만난 직원은 무슨 책이냐고 묻지도 않고 한국어. 자체에 호감을 보낸다. 직원 중에 한국어 하는 사람이 있다며 K팝 스타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좋아하는 거다. 그 직원은 오늘 출근은 안 했지만 기증부서로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이집트 소녀들의 열광적 환대ㅎㅎ




담당직원이 나와서 어떤 책이고 왜 기증하려고 하냐고 K염소에게 묻는다. 염소는 잠시 쫄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간략하게 이 책을 쓴 동기와 내용을 말했다. 그리고 이유는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다양성. 그 단어만 계속 무한반복했다. 영문 초록이 있다면 등록이 가능하지만 그게 없으니 자료실에 보관했다가 한국어 관련 학과나 기관에 자료로 쓰이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미션을 수행하고 I와 K를 만나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로 축배를 들었다. 호텔 안 구경만 하던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 들이치는 실물 파도에 맘이 설렜다. 우리의 무용담을 듣는 파도도 미친 듯 침을 튀기며 신난 것 같다. 아이는 언제 울었나 싶게 방글방글 웃고 있다.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달라진다. 어쩌면 아이 덕분에 우리를 목적지에 무사히 데려다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무리에서 벗어났다는 불안감과 죄책감,

모두가 나서서 그곳에 가려는 나를 방해하는 것 같은 답답함,

염소는 그 마음을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현실적 목표를 주장할 때 올라오는 두려움까지.



호텔에 들어가니 전혀 다른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두가 로비에서 아주 여유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베카와 다른 일행은 이미 이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거기에 네 이야기가 있다니 기뻐. 그녀가 엄마처럼 말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나고 염소는 도서관에서 보낸 땡큐레터를 받았다.




염소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염소는 책, 자신의 이야기 안에 '자신'이 있길 원했다. 자신의 솔직한 느낌과 마음이 온통 담긴 것을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나로서' 제대로 소.통.하고 싶다가 있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다르게 해석되는 혹은 전달이 되지 않는 세계에서 염소는 아주 화가 났는데 이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무기력이 되곤 했다. 


나의 솔직한 느낌으로 연결되고 싶어.


이 책의 맨 마지막에 그에 대한 대답이 실려 있다. 아마 북극성 탐사가 끝날 즈음이면 그 깊은 무의식의 이야기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염소의 그건.. 아주 쉽게 다른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뛰쳐나가고 생쇼를 했던 염소는 그걸 몇 달이 지나고 알게 되었다.


위에 등장하는 K는 염소와 이집트 여정 내내 방을 같이 썼다. 피곤에 지쳐 돌아와도 한두 시간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K는 염소가 책에 뭘 썼는지 궁금해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힘들었던 K는 그 길에서 염소가 얻은 시간을 듣고 싶어 했다. 매일 밤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의 솔직한 감정과 느낌이 그대로 그녀에게 흘렀다. K는 그 길이 궁금한데 오래 걷고 이런 건 자신도 없고 취미에도 안 맞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 걷는데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K는 그다음 해에 이 길을 걸었다. 그녀는 같은 800km를 염소보다 더 적은 시간 안에 완주했다. 그 길에서 보낸 문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너의 산티아고의 이야기가 나의 길에 영감이 되었어.


염소는 그때 과거를 나누었지만 어쩌면 또 다른 미래를 같이 들여다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솔직한 느낌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염소 자신의 몫이었다. 그건 자신이 허용하는 세상이었다. 



너 자신의 느낌을 믿어 줘. 염소야.

화가 나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니야.

거기에 반응하는 네 안의 결핍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봐. 

그리고 그걸  자신이 채워줄 수 있다는 걸 믿어 봐.  

혼란스러웠던 세상이 점차 또렷해질 거야. 




펼치기. 완료. 화성 미션 클리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땡큐레터에 같이 붙어온 공문, 뻔한 글자가 쓰인 공문이 이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염소와 도서관에 동행해 주었던 이네스, 케이트, 그리고 사마디(아기)




소리 질러





커버사진; 알렉산드리아, 2022.11. 화성에는 물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