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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Jun 23. 2024

목성에 사는 전갈 (1)


점 펼치기 편 >3< 목성



+ 천문, 점성학을 이용해 봅니다. 저의 행성과 별자리를 토대로 캐릭터와 옷을 만들어 입히고 무대에 세웁니다. 행성이 하는 그날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 답을 이어 나가다 보면 종착지에 다다르는데요. 거기에 한 사람의 비전이 새겨져 있는 별이 있다고 하네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가는 여정... 같이 가주실... 건 가요?




나의 북극성을 향해 가는 길, 달에 이어 들러볼 행성은 '목성'이다. 목성은 태양계 행성 중에 가장 크며 자신을 확장하는 에너지,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이름 또한 신들의 제왕 제우스, 로마 신화의 주피터(Jupiter)가 아닌가. 멀리 있지만 덩치가 워낙 크기도 하여 밤하늘에서 달과 금성 다음으로 세 번째로 밝게 보인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향해, 새로움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고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다. 개인적으로는 성장을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지점 같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니 목성이 전갈자리에 있었다.  




나의 목성은 전갈자리의 옷을 입고 6번째 집(일상/건강의 영역)에 있다




캐릭터(목성)+옷(전갈자리): 전갈은 내면의 깊은 그림자를 파고들고 그걸 의식으로 끄집어내어 변형하면서 성장하는 캐릭터다. 어느 날 전갈이는 갑옷을 홀랑 벗어보기로 한다.

+무대: 툴루즈, 화가의 집

(캐릭터가 곧 무대이기도 하다)




목성이 그날의 무대에 던지는 질문.


0. 나는 어떤 상황에서 기회를 이용하고 성장하는가?

0. 그것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알게 되는가?

<어떤 믿음이 생겼는가? 혹은 확고해졌는가?>

0. 나의 성장과 앎이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



전갈은 이 질문을 염두하며 목성 탐사를 떠나기로 한다.




<목성- Toulouse>


++++++++

어느 날 잠에서 깬 물고기는 놀랍게도 전갈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미끈하고 유연한 몸은 어디로 가고 딱딱한 갑옷을 두른 채 툴루즈 광장 한 복판에 서 있다. 집에서 눈을 뜬 그레고르보다 어쩌면 더 충격적인 상황이다. 아니다. 차라리 낫다. 물고기이길 기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전갈이면 어떻고 게면 어떠리. 애초에 황소나 사자여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을. 이 쓸데없는 초조함은 몸에 밴 습관처럼 참으로 친근하다. 소금기를 머금은 짠내 나는 몸을 가릴 것을 찾아 열심히 두리번 거린다. 목줄을 한 강아지들이 앙증맞은 발놀림을 선사하며 전갈의 시선을 끈다. 반가운 마음에 집게발을 들어 허공에 휘적이니 전갈 몸집에 몇 배나 되는 녀석이 놀라서 뒤로 펄쩍 뛰며 앙칼지게 짖는다.

  


장밋빛 도시라고 했다. 벽돌이 발산하는 그 빛은 고요한 일본식 정원 한가운데에도 붉은빛을 떨어뜨린다. 보이지 않는 물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흔적이 짙어지며 물이 몸에 닿았다. '나는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다. 전갈이다.'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몸을 숨겼다. 그 안에서 안으로, 더 안으로, 더. 더. 더. 끝도 없이 들어간다. 나의 몸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어디론가로 이어진다. 광장이다. 광장의 소란함 속에 있는 자신을 본다. 화려한 향이 지나고 색색의 옷이 춤을 추는 그곳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너울너울 땅을 울린다.

 

네 껍질을 가릴 나를 좀 보라고. 멋지지 않아? 나를 입어 봐.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써 봐.


동시다발적으로 들리는 소리에 이끌려 한 옷가게로 들어간 전갈은 저도 모르게 아주 붉은 코트와 더 붉은 스타킹을 샀다. 그 색이 어딘가 모르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평소 같으면 시선을 두지 않았을 모든 것이 되살아나 새들처럼 사방에서 지저귄다.  



툴루즈에서 전갈은 다양한 눈을 만났다. 눈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전갈은 그 안에서 매번 자신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전갈의 고향이 거기 있다. 심연, 아주 깊으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나오는 법을 모를까 두려워진다.



가을바람이 조금 세찬 날이었다. 전갈은 여느 때와 같이 대나무숲을 지나 물이 없는 정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하릴없이 물을 그리다가 돌연 옷을 벗어보기로 했다. 이곳에서 급하게 샀던 무거운 옷들을 시원하게 벗기로 한 거다. 딱딱한 껍질을 공개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번 결심한 것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누드를 그리는 화가를 만났다.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직업 화가였다. 전갈은 그의 모델이 되어 보기로 했다.


그의 작업실은 오래된 프랑스식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이다. 아주 좁게 뱅글뱅글 감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4층보다 훨씬 더 올라온 느낌이다. 복층 구조로 된 그 집을 아래는 작업실로, 위는 생활공간으로 쓴다. 그의 살림살이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정리한 듯 안 한 듯 애매하게 어수선하다. 손님이 온다고 딱히 더 신경 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청소 좀 하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고개를 들면 천장에 낸 창문으로 하늘이 훤히 보인다. 그리로 햇살이 아낌없이 들어오니 다락방 느낌은커녕 꼭대기층의 프리미엄을 붙여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위층 침실 공간 옆으로는 지붕과 바로 연결된 창문이 있다. 그는 여름이면 지붕에 앉아서 영화도 본다고 했다. 빔프로젝터를 반대편 건물 벽에 쏘고 지붕에 걸터앉아서 보는 영화라. 10월 말에 여름을 생각하며 더워졌다.



오랜 친구나 되는 것처럼 집 구경을 하는 것까진 참 좋은데 대체 어떻게 누드화에 도전하지. 막막하다. 그의 작업실 여기저기에 누드화가 펼쳐져 있는데 그 그림들을 보니 더 막막하다. 그대로 돌아서 나가고 싶었다. 

'네가 무슨 비너스라도 되는 거야. 너는 그저 전갈일 뿐이야.'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허겁지겁 밟으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는 그림을 내일 그릴 작정인지 아주 여유롭다. 그가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찬찬히 본다. 비너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생김새의 몸들이 있다. 자세도 표정도 다 다른. 

아. 이거다! 하는 것은 없지만 어떤 것도 나쁘지 않다. 



그는 전갈에게 묻는다. 



너의 어떤 모습을 담고 싶어? 





Toulouse, 2023 가을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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