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이었다. 우산이 소용없을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꽂는다. 전날,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후 줄 곳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날씨가 나빴던 탓도 있지만, 여행의 날수가 더해질수록(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피로가 쌓여가고 있었다. 비에 젖은 몸만큼이나 마음도 묵직했다. 도무지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에 가만히 있는 것도 그리 편안함을 주지는 못했다. 두 달간의 여행 일정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호텔은, 작은방에 초라한 침대 2개가 겨우 있는 정도였다. 늦잠에서 깨어 배고파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길에서 자주 등장하는 콘서트 광고판이, 우리가 ‘빈’에 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호텔에서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지하철 노선이 폐쇄되어 버스를 타야 했다. 오페라 하우스와 슈테판 대성당이 있는 다운타운으로 가려고 딸아이와 작은 우산 하나에 몸을 구겨 넣고 버스정류장을 찾아 걷던 중, ‘벨베데레 궁전’ 표지판이 보였다. 18세기에 지어져 빈의 유력자 ‘오이겐 공’의 여름 별장이었던 곳인데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 비가 이렇게나 많이 오는데 가까운 곳에 가서 그림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궁전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거리에 물이 차 있는 곳이 많아서 양말이 다 젖었다. 딸은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으려고 나에게 바짝 기대어 묵묵히 걷고 있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궁전이 눈앞으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한산하다. 몇몇 사람들만 입장을 하려고 표를 사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 다른 관광객들은 어디를 갈까? 여행 중에 비가 내리면 참 난감해진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특히 더 그렇다. 한 도시에 머무르는 기간이 짧다 보니 하루를 망치면 제대로 못 보고 떠나왔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들과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외관이 베르사유 궁전보다는 좀 더 간결하고, 버킹검 궁전보다는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이라고 불릴 만큼 자로 잰 듯 잘 정돈되고 가꾸어져 있었다. 비를 흠뻑 머금은 잔디와 꽃, 연못은 안개에 휩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정원을 뒤로하고 궁전 안으로 향했다. 내부는 겉모습보다 훨씬 화려했다. 천장이 캔버스가 된 회화 작품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고, 조각상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만큼 생동감이 있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높은 천장에서 우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궁전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가 도드라졌다. 궁전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은 조금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우산을 쓰고 정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느릿한 발걸음이, 숨 가쁜 여행을 한 탬포 쉬어가라는 몸짓 같았다. 한가한 궁전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우아한 공간에 깔린 레드카펫은 궂은 날씨로 가라앉은 기분을 한층 고조시켜 주었다. 비를 원망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벨베데레 궁전 맞은편 호수에서 오리에게 먹이주기(2012년)
궁전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던 그때, 이곳에 나의 오랜 미술 스승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가 오스트리아 화가라는 사실을, 그래서 벨베데레 궁전에서 한 때 좋아했던 작품을 맘껏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마음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공간에 들어서니 눈앞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그토록 열광했던 ‘에곤 실레’와 그의 스승인 ‘클림트’ 작품들이 펼쳐졌다. ‘빈’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잠시 잊은 채, 비 오는 어수선한 날씨 탓만 했던 나를 자책하고야 말았다.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에곤 실레’ 전을 보았던 20여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보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게 되면서 ‘나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미술사를 배울 때 잠깐 스쳐간 화가 ‘에곤 실레’. 그 후 파리에 머무르던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화집으로만 접했던 그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퐁피두센터에서는 근현대 작가들의 기획전이 자주 열렸다. 우연히 들렀던 퐁피두센터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들을 만났을 때, 아주 강력하게 그의 그림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유는 솔직함에 있었다. 자신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늘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 중요도가 높았던 나로서는 내 작품 앞에서도 솔직하고 싶지 않았었다. 에곤 실레는, 결국엔 벗겨질 포장을 겹겹이 쌓았던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자신의 내면을 이토록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고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림 속 인물에게서 삶이 고통으로 느껴졌다. 어딘지 불안한 얼굴 표정이 작품 앞에 선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앙상하고 일그러진 모습의 자화상에서 혹은 작품 속 여인에게서, 한때 불행하다고 느낀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만든 벽에 나를 가두고 외롭다고 힘들다고 자책했던 시간들. 의심과 불안한 감정, 왜곡되고 뒤틀린 내면이 캔버스에 담겨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붓터치의 표현력과 단순한 색감이 이후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 그림에서 거친 붓질로 표현된 누드화, 유럽 풍경 속을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 때로는 원색적인 색감은 어쩌면 그때 스승에게서 받은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시 만난 ‘에곤 실레’의 작품은 한때 이유 없이 불행하다고 느꼈던 비뚤어진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었지만, 어린 딸에게는 미안할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이었다. 인물들의 정나라 한 표현이 딸의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말았다. 삶이 행복하고 기쁜 순간보다는 힘겹고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작품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딸은 ‘구스타브 클림트’의 ‘The kiss’ 앞에서, 특별한 작품이라는 것을 감지라도 한 듯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남녀가 황금빛 옷과 장식에 둘러싸여 키스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아우라는 조명 아래 반사되어 방안 가득 황홀한 기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인물의 표정이, 관능적으로 때로는 외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온갖 가장 좋은 것들을 휘둘렀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뒤틀린 모습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우리는 작품 앞에서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몇 명 되는 않는 관람자들도 오랫동안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종이에 아크릴(26×36센티미터)
아름다운 작품을 앞에 두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사랑, 그리움, 가족, 외로움, 두려움......‘미술의 도시’ 빈에서, 여행이 힘에 부칠 즈음, 한때 나만의 스승이었던 화가를 강력하게 만났다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클림트의 ‘The kiss’를 바라보는 딸아이의 표정 속에서, 비가 내리던 벨베데레 궁전에서의 하루는 오래도록 추억의 공간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