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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 Aug 13. 2022

다시 만난 베르사유

옛 추억을 그리다- 베르사유, 프랑스


오랜만에 가는 길이다. 오래전, 베르사유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수업을 들으러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이 기차를 탔었다. 베르사유에 있는 미술학교를 잠시 다녔던 때, 친구 승아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림’이라는 공통분모로 알게 되었다. 둘 다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하나 더 비슷한 점이 있다면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프랑스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거주하려면 반드시 학교를 다녀야 했고 쉬운 방법으로 택한 학교에서 승아를 만나게 되었다. 마음이 천사 같고 언제나 세상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프랑스 남자 친구를 사귀며 음식도 문화도 완벽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지나서 딸과 함께 가는 기차에서 옛 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가는 길이 마치 친구에게 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련하다. 베르사유에 가면 아직도 승아가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20대 중반에 유학생으로 만나 서로 힘이 되어 주었다.

처음에는 친구 덕분에 자연스럽게 베르사유에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승아가 베르사유를 떠나 파리로 이사 간 후에도, 기분이 좋을 때나 울적할 때나 습관처럼 베르사유에 갔었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있었다. 마치 친구를 만나러 가듯이.

 

주말이라 기차는 사람들로 꽉 찼다. 화창한 날씨 탓인지 나들이 가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은 한껏 발랄해 보였다. 프랑스는 기차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노선이 잘 되어 있어서 파리 시내에서 편리하게 교외나 지방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어딘가 가고 싶은데 혼자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없으면 베르사유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궁전을 둘러보고 정원을 산책하곤 했었다. 정원은 워낙 넓은 공간이고 한적해서 오래 걷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혼자 걸을 때면 ‘내가 왜 여기에 혼자 있지?’라는, 절망감에 가까운 외로움이 뼛속 구석까지 파고들었다. 그때는 지독하게 힘들거나 지나치게 행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행복이란 건, 그토록 원했던 프랑스에 와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정말 살아보고 싶었던 나라이지 않았던가. 이곳에서 불행하다는 것은 나에게 지는 거였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기 싫었다. 비 오고 해 뜨기를 하루에도 수번씩 반복하는 파리의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내 감정이 그랬다.

승아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걸었던 순간을 떠올리다 보니, 벌써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역에서 밖으로 나와 아주 익숙한 모습의 거리를 따라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으로 향하는 길에 있던 작은 카페도 상점도 오래전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궁전으로 가는 인파 틈에서, 살포시 잡은 딸아이의 손이 너무 귀하고 고마웠다. 작지만 나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가 함께한다는 기쁨이 너무나 컸다.

 

궁전 안으로 들어서니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대단하다는 감탄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이 느껴지리만큼 화려함의 극치였다. 도대체 인간의 손길이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마리 앙투와네트’의 거울의 방에 들어서자 딸은 놀라워하는 표정이다. 금빛 장식과 더 이상 호화로울 수 없는 크리스털의 어우러짐은 가장 극적인 화려함으로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금빛 테두리 안에 들어찬 회화들은 가히 경이로웠다.

“엄마, 이 방을 만든 사람들은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딸은 조금 어린 나이지만,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난 후 프랑스란 나라에 대해 적잖게 놀랐었다. 아름다울 줄만 알았던 나라였는데 ‘프랑스혁명’을 영화로 경험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보니 나름 생각이 많아졌던 것이다. 더럽고 악취 나는 파리의 뒷골목,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이 등장했던 영화를 떠올리며 이곳 궁전을 견주어 보는 것 같았다.

‘거울의 방’에 한참을 머물렀다. 귀하고 값진 것으로 치장된 공간과 고통으로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세상에 부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두 부류만 있었을 것 같은 18세기, 배고픔을 외치던 사람들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 던 마리 앙투와네트의 발언이 사실여부를 떠나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고 궁전에서 호화롭게 살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 불행에 처해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그녀의 방이 화려함을 넘어서 슬프게 느껴진다.

한 여성의 욕망이 가득 차 있는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은 일자로 시원스레 뻗어있었다. 잘 가꿔진 정원, 드넓은 잔디, 화려한 장식을 휘감고 있는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인공적인 미의 최고를 완성하고 있었다.

                                             종이에 아크릴 (26×36센티미터)

 

딸아이와 끝도 없어 보이는 정원을 걸었다. 햇살이 따사롭다. 하늘은 시원스레 파란색 수채화물감을 풀어놓았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숫가에 앉아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놀고 뒹군다. 예전에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혼자 외로이 정원을 거닐던 때가 생각난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에서, 넓디넓은 정원에서, 내가 너무 작고 애처롭게 여겨졌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이다.

오늘은 딸아이가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 아직은 어리지만, 오늘만큼은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딸의 작은 손을 꼬옥 잡아본다. 다시 환한 얼굴로 나무와 분수 사이를 가로지른다.

                 남아있는 단 한장의 사진, 베르사유 궁전(2012년)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승아가 살던 집 앞을 들러보았다. 20대의 살랑거리는 마음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 보고 싶다.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3.

                               -2012년 열 살이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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