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5. 2019

나영씨의 병원전(戰)

보름 전 문나영(가명)씨는 서랍장에서 오래전에 마련해둔 선글라스를 꺼내들었다. 언젠가 여행지에서 몇 번 쓰고는 통 사용할 기회가 없던 검은 안경. 나영씨의 표정이 복잡했다. 오늘은 안경을 쓸 작정이다. 마스크도 챙겼다. 도통 진정되지 않는 불안함만 빼면 얼추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평소 멀게만 느껴졌던 병원 출근길(나영씨는 간호사다)을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른다. 병원에 들어서자 로비에는 이미 검정안경과 모자,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마에 띠를 맨 사람도 여럿. 동료가 건넨 조끼를 받아든 나영씨는 그제야 아까부터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손바닥에는 땀일지 긴장일지 모르는 액체가 흥건했다. 


‘약해지면 안돼’ 나영씨는 이를 악물었다. 미칠 듯이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혹은 억누르려는 듯. 스물넷, 그 날은 나영씨가 난생 처음으로 파업에 동참한 순간이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가을 날씨가 완연했던 그 날 A병원 로비에는 직원들이 모였다. 그동안 몇 번의 기자회견과 협상이 진행됐지만 병원과 그 뒤의 재단은 요지부동이었다. 파업은 보름을 넘어가고 있었다. 병원 홍보팀이라던 사나이가 말했다. “월급을 올려달란 거죠. 과도하게요.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거죠.” 그의 말을 막은 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의 외침 때문이었다. “식사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위장병과 방광염에 걸린 직원들!” 다시 사나이의 말. “노조가 병원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니까요.” 


A병원에는 늘 환자가 넘쳐났다. 노동자들은 계속된 퇴사의 원인을 병원의 이상한 시스템 때문이라고 했다. 신축 병원 건립도 곱지않은 시선이 많았다. 이들은 턱없이 낮은 임금, 적은 인력, 비정규직을 통해 뽑아낸 돈으로 새 병원을 세운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인근병원에서 채용 공고가 나면 직원들이 빠져나가요. 참다 참다 그만두는 거예요. 일이 힘들어서?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가는 기러기? 그렇지 않아요. 병원의 ‘도구’가 되기 싫어서 정든 동료들과 직장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거예요.”


김란영(가명)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란영씨는 그저 즐겁게 일하고 싶어서 파업에 동참했다. 병원이 파업을 했지만, 환자와 지역민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상태로 일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세요. 물론 항의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정말 죄송하다고, 우리가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를 간곡하게 말씀드리면 그러세요. ‘꼭 바꾸라’고요. 그때마다 저도 모르게 울어버려요.”     


사진=픽사베이



병원 로비에는 ‘섬’이 있었다. 누군가는 ‘점거’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는 ‘비탄의 장소’라 말하는 분리된 공간. 로비는 파업 기간동안 섬처럼 격리됐다. 나영씨는 핫팩을 손에 쥐고 두터운 양말을 신었다. 그 전ㄲ지 바삐 오갔던 병원 로비가 이토록 추울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비닐 따위를 깔고 바닥에 앉아 있노라면 한기가 전해졌다. 몇 걸음 걸어가면, 병원을 나갈 수 있었다. 태양이 비치는 그곳 대신 냉골 바닥을 선택한 건 나영씨의 선택이었다. 


나영씨도 처음에는 겁이났다. 파업 동참 후 훗날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혹시 모를 불이익이 있을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맸다. 그저 환자를 돌보고 싶었던 나영씨가 병원 로비에 설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다. 난생 처음 세상을 향해 ‘나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는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는 까만안경을 던져버렸다.  


그렇지만 그날 병원 로비에 모여 있던 수많은 ‘나영씨’는, 그러나 세상과 싸움을 벌이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파업은 처음이었어요. 두려웠어요.엄마, 아빠도 내심 걱정을 하시겠지만 그러세요. 잘 하라고, 꼬 이기라고요.”


의지를 다져도 ‘무노동 무임금’의 냉혹함 앞에선 매순간 작아졌다. 수백 명의 나영씨는 생계 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노사 협상이 원만히 끝나 일터로 돌아가길 바라지만 상황은 더디게 흘렀다. “저도 사람인데 왜 먹고 사는 게 걱정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여기서 도망치면, 멈춰버리면 다음은 없을 것 아녜요? 제 후배들은 어떡해요.”


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직원 중 상당수는 자취생이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면 부모님께 단 얼마라도 용돈을 보내긴 커녕, 언감생심 저축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월급이 짰다. 수십년 근무한 직원 월급은 다른 민간 병원의 신입 직원과 똑같았다. 한 간호사가 귀띔했다. “3년동안 동기 중 10명이 퇴사했고, 남아있는 이들도 퇴사를 고려중이에요.” 


“처음에는 열심히 배우자는 마음뿐이었어요. 시간이 가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어요. 밥을 병동으로 올려다줘도 먹을 시간이 없어요. 화장실도 못가요. 미래를 보고 참자고 해도 선배들을 보면 더 좌절했어요. 악착같이 버텨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왜 내가 병원에 들어오려 했는지, 환자를 돌보고 싶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해요. 그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영씨는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윗선에게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자식에게 굶고 화장실도 가지말고 
일하라고 강요할 수 있어요?


수많은 나영씨는 다시 병원에 돌아갔을 때 몇 푼이라도 저축을 하고 밥을 굶지 않아도 되길 바랬다. 생리현상을 참느라 방광염에 걸리지 않는 일터를 원했다. 이들의 소박한 바람은 과연 이뤄졌을까. 아니면 전국의 크고 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수많은 ‘나영씨’는 오늘도 기약 없는 버팀을 이어가고 있을까.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이전 08화 극한직업, 소방관 25시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나는 투명인간을 보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