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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Jul 19. 2021

밥이야기 [소,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홍콩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형 쇼핑몰 화장실 앞에서 한 여인이 쪼그려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곁의 유모차에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오가는 이들이 한 마디씩 했다.


"꼴에 옷은 좋은 것을 입었네."


여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숟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딱 소리를 내면서 플라스틱 숟가락이 부러졌다. 여인은 두 동강이 난 숟가락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손으로 밥을 움켜쥐고는 입에 쓸어 넣기 시작했다. 밥알을 씹느라 얼굴은 일그러지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국회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전 국민에게 주자는 쪽과 소득하위 80%에게 선별 지급을 하자는 쪽 사이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요아킴 팔메 교수에게 사회보장을 위한 지급 방식을 물어본 적이 있다. 팔메 교수는 스웨덴 복지모형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별지급에 비판적이었다.


"세금을 내는 다수는 이렇게 세금이 사용되는 데 불평을 할 수 있지만, (선별지급을 하면) 대상은 그 사회의 소수자로 전락시켜 정책 효과를 약화시킨다."


영화 ‘희극지왕’(1999년)에서 삼류배우 사우(주성치)는 출연 배우에게 나눠주는 점심밥에 집착한다. 흰색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풀풀 날리는 밥 한 덩어리와 간장 몇 숟가락, 고기 몇 점이 전부인 초라한 한 끼를 갈구하는 그에게 누군가 비웃으며 말한다.


"밥은 배우만 먹을 수 있어!"


사우에게 밥은 그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행위였던 것이다.


돈은 밥이다. 밥은 생존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생계형 범죄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설가 김훈은 세상의 모든 밥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갖는다고 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만들어낸 결핍은 개별적이겠지만, 이를 채워주는 행위는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난지원금이 누군가에게는 요긴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한 끼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돈은 밥인 동시에 생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재난지원금이 누구에게 더 절실한지를 따지는 것은 그래서 좀 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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