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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30. 2021

나도 자가였으면 좋겠어 [소,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최근 이사를 했다. 전셋값이 무섭게 오르고, 은행은 대출을 줄이는 통에 집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집이 있는 곳은 구도심. 여기서 몇 발자국을 가면 새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구도심과 사뭇 비교되는 깔끔하게 정돈된 가로수와 보도블록에 나는 적잖이 속이 상했다. 구도심과 신도심을 구분하는 것은 불과 몇 미터 밖에 되지 않는 횡단보도 하나였다.


부동산 대란 와중에 누구는 시세 차익을 수 억원 이나 벌었다고 한다. 이런 뉴스가 횡행하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혹자는 상대적 빈곤을 토로하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절대적 빈곤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을 소유하려는 집착에 가까운 유난스러움을 무어라 힐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유난스러움이나 속물스러움으로 힐난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러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그 너머, 복지의 기본이자 완성인 집의 부재에 놓인 이들을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


이 년 전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하캄’을 만났었다. 그는 ‘경계인’이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세운 분리장벽 중간에 그의 집이 있었다. 방 네칸에서 네 가구가 비좁게 살고 있었는데, 그를 내쫓으려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압박과 위협을 가했다. 하캄은 꿈쩍하지 않았다. 집값 때문이 아니라 터전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또 어떤가. 대를 이은 독재,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려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정부군의 봉쇄와 공격을 버티다 터전을 버려야 하는 시리아 알레포의 사람들은 결국 도시를 등진다. 그들은 눈물을 흘린다. 터전을, 삶을 버려야 한다는 고통 때문이다.


탈레반 장악 이후 살해 위협을 받다 아프가니스탄을 등지고 이역만리 우리나라까지 와야만 했던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심정이란 또 어떠했을 것인가.

사진=김양균의 코드블랙

몸 하나 뉘일 곳 없는 이들이 처한 절대적 빈곤. 가족의 터전을 지키려는 가장의 고군분투. 우리는 그것을 알려 하지 않는다. 너무 빠르고 각박한 세상, 우리 눈을 가리는 무언가에 둘러싸여 정신이 팔린 까닭이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나아가 가상의 세계가 우리 현실 가까이 왔다고 한다. 진보된 기술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발밑에 누굴 밟고 있는지, 곁과 뒤에 누가 있는지 관심 둘 새가 없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숱한 삶이 스러져간들 신경이나 쓸 겨를이 있겠는가.


갈수록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발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삶까지 진보시키는가. 나는 확답하지 못하겠다.

 

지금도 우리 발 아래에는, 등 뒤에는, 기술의 호혜를 누릴 겨를은커녕 매일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기술의 칭송 이전에 우리는 삶을, 사람부터 보아야 한다. 기술에 대한 헌사에 앞서 눈물 흘리는 이들의 손부터 맞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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