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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Sep 16. 2022

말장난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소,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소설 ‘1984(조지오웰)’  독재국가 오세아니아는 ‘신어(Newspeak)’라는 공용어를 쓴다. 신어는 정확한 전달에 극대화된 언어다. 은유와 함의, 중의와 간접 표현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사상과 상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러한 소설의 설정은 언어결정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것은 언어가 의식과 사고,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견해로, 현재는 부정된 개념이다. 말이 사고를 지배하진 않더라도 말이 사고를 반영한다는 건 특히 다음의 말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이미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실험 사진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촬영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대안적 사실을 준 것이다. 거짓이 아니다.” 


앞은 지난 2005년 12월 16일 H박사가 줄기세포 논문을 철회하며 한 말이다. 뒤는 1월22일 미국 백악관 켈리앤 콘웨이 선임고문이 숀 스파이서 대변인의 거짓말을 두둔하고자 한 말이다.


말장난에 불과한 이러한 말은 진실을 감추고 책임을 면피하고자 내뱉은 불확실한 단어의 조합일 뿐이다.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H박사에 대한 기억도 대개 그렇다. 그는 언론 앞에서 그는 막힘없이 말을 했다.


휠체어를  장애인을 벌떡 일으켜 이제 과거 보여주셨던  날렵한 솜씨를 다음 다음번 열린 음악회에서 다시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가 휠체어 댄스는  시절을 그리며 추억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시 보여줄  있는 그날은  국민과 함께 같이 가고 싶습니다.” (2014 10 열린음악회에서)


사진=PD수첩 프로그램 갈무리


H박사는 참여정부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위세가 대단했다. 영롱이를 시작으로 그는 줄곧  방을 노렸던  같다. ‘줄기세포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동종 분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찬사와 의혹, 성과는 있지만 논문은 없는 과학자. 그에겐 줄기세포가 있었지만 과학은 없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연구에 이용되는 난자는 도대체 어디서 구할까. 동물 난자를  다해도 인간의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난자가 ‘상당히많이 필요했을   난자를 어디에서 수급하는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연구자들과 이에 대한 토론을  적도 있었다. 결론은 없었다. 당시 누군가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H박사니까.”


그랬다. H박사는 과학자들이 평생 동안 한번 이룰까 말까한 연구 업적을 만들어  사람이었다(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그만의 묘안이 있지 않을까. H박사니깐. 당시 대부분 그렇게 믿었다.  


믿음이 의심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뉴스에서 난자 기증자들이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백주 대낮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ㅁ사 관계자의 말을 아직 기억한다. 그는 회사의 주식이 요동칠 거라고 말했다. 조만간  일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큰일은 정말로 일어났다.  


사진=PD수첩 프로그램 갈무리


이전이나 이후에도 신문 1면에 국내 과학자의 논문 게재 소식이 대서특필된 것을  적이 없다. H박사의 해외 유수 학술지의 논문 등재 소식을 미디어는  다퉈 보도했다.


거짓말처럼 ㅁ사의 주식도 반등했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난자 수급 방법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의 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밝혀졌다.  


PD수첩이 H박사 연구팀의 불법 난자 매매를 폭로하던 날이 아직 생생하다. 난자를 돈을 주고  것만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여성 연구원이 난자를 기부, 스스로 자신의 난자를 연구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연구원의 생사여탈권을  PI 암묵적 요구를 뿌리칠  있을 용기가 일개 연구원에게 있었을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H박사는 기자회견에서 예의 ‘날렵한’ 언어의 유희를 펼쳐보였다. 비루한 변명이었다. 이후 그는 몰락했다. 더 정확하게는 몰락한 것처럼 보였다. 


가끔씩 궁금해진다. H박사가 실제 줄기세포 연구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연구과정의 비윤리성은 국위선양과 애국심 아래 묻혔을까.


그러나 H박사는 아직 건재하다. 그의 제자들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논문 대신 언론 플레이를 선호하는 그의 방식도 여전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H박사가 공식 석상에서  말들을 분석하면 그의 생각을 엿볼  있다. 말은 사고를 반영한다. 대안적 사실이나 인위적 실수 같은  장난의 공통점은 하나다. 반드시 진실을 숨기고야 말겠다는 말장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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