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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Sep 20. 2022

여행지로써 홍콩에 대하여 [소,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형, 이번 추석에는 집에 안 내려가려고요.”  

    

후배 녀석은 추석(2018) 되기 한참 전부터 이렇게 말했다. 이유야 뻔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이나 일가친척들의 결혼 잔소리가 싫단 얘길 것이다.


나는 홍콩 여행이나 가라고 대답한  짧은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정작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 녀석은 집에서 빈둥대느니 고향에 다녀올  그랬다며 내게 짜증을 부렸다.    

  

“형은 무슨 홍콩을 가래요.”      


아니, 홍콩이 어때서!        


 (2018) 나는 홍콩에서 열흘 정도 지냈다. 날씨는 거지같았다.   없이 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잔뜩  있었다. 외출하자마자 셔츠를 땀으로 흠뻑 젖게 만들던 지긋지긋한 습기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지 않으면 없앨 수가 없었다. 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크다보니 냉방병을 달고 지냈다.


그제서야  홍콩 사람들이 뜨거운 차를 즐겨 마시는지 알게 됐다. 습도를 이겨내기 위한   (특히 홍차) 겨우 익숙해질 때쯤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여행지로써 홍콩이 좋은 이유를 설명하라면 난감했다. 후배 녀석의 힐난처럼 여행지로써 홍콩이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곤 했다.


사실 음식도, 기후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 도시의 다양성은 뛰어나지만 어디를 가든 넘쳐나는 인파와 살인적인 물가와 방값까지 생각한다면 홍콩은 딱히 추천할 만한 여행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난 홍콩이 좋았다. 장거리 여행의 중간 지점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이여서? 아니면 면세 가격으로 명품을 살 수 있는 쇼핑의 천국이라서? 둘 다 내가 홍콩을 좋아하는 이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김양균의 코드블랙


그 도시가 좋았던 최초의 이유는 영화의 영향이 컸다.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를 만든 왕가위는 홍콩의 이미지를 중국인과 서남아시아인, 서양인들이 마구 뒤섞여 퇴폐성과 우울함, 기묘한 긴장감이 서린 공간으로 그렸다. 그게 좋았다. 실제로 가서 느낀 감정은 그와 같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끌렸다.      

   

또 그 도시를 생각하면 유통기한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어치우던 금성무와 임청하의 레인코트, 왕비의 짧은 머리, 그리고 양조위가 입었을 법한 흰 팬티가 떠오른다. 그래서 홍콩의 이미지는 내게 영화적이다.

     

공간도 좋았다. 중경삼림의 배경인 충칭빌딩이 가장 기억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거리마다 흔히   있는 샌드위치와 샐러드, 콜라 따위를 파는, 영화에서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이름의 홍콩 식당이 좋았다.     


그 영향으로 더 이상 방문 횟수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여러 번 그 도시를 갔지만 점심은 보통 그런 식당에서 해결했다. 음료수와 샌드위치 따위를 내동댕이치다시피 내어놓던 점원은 왕비 같은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나도 양조위나 금성무 같은 미모는 아니었으니 피장파장.     


여행지로써의 홍콩은 이런 여러 이미지가 있어서 재미있다. 그럼에도 삶이 팍팍해 여행을 떠나려는 1 가구여, 홍콩이 탁월한 여행지라고 하긴 어렵소만! 그러니 추천까진 못하겠다.


굳이 가려거든 인파의 홍수 속에 완전한 이방인으로 지내보는  때로는 자신이 찾던  발견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말하련다.  

    

*덧붙이는 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로 홍콩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홍콩이 좋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는 하겠지만, 이유는 달라졌다. 점점 중국화 되어가는 홍콩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어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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