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이 코로나19 백신 최초로 공식 허가를 받으면서 후발 주자인 국내 백신은 더 치열한 시장 경쟁에 놓일 것 같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1년 8월 23일(현지시각) 화이자-바이오앤텍 코로나19 백신(개발명 BNT162b2)을 정식승인(BLA)했다. 이는 화이자 측이 팬데믹 상황에 한해 사용 가능한 긴급사용승인(EUA)보다 기간 제한없이 도입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과 이번 결정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말했다.
FDA의 정식승인은 백신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검증이 끝났음을 의미하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화이자 백신은 후속 진입 백신의 긴급사용승인(EUA)을 제한하는 독점 효과를 갖게 된다. 정 원장의 설명이다.
유럽의약품청(EMA)보다 FDA의 규제 허들이 높아요. 그리고 FDA의 결정은 대다수 국가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죠. 화이자 백신에 대한 외국 규제기관의 품목허가 승인속도가 빨라질 겁니다.
화이자 백신 개발 과정에는 ‘최초’란 말이 여러 번 붙는다. 화이자는 2020년 3월 17일 독일기업인 바이오앤테크(BioNTech)와 mRNA 백신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9개월여가 지난 같은 해 12월 2일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화이자 백신을 긴급사용승인했다.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백신 승인이었다. 9일 후인 그해 12월 11일 FDA도 해당 백신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을 결정했다.
2021년 5월 7일 화이자 측은 FDA에 정식 승인을 신청, 넉 달여 만에 정식 승인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백신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이 10여년 가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백신 개발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빠른 속도였다.
현존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가장 높은 95.0%의 감염예방효과에 힘입어 2021년 7월 2일 기준 화이자 백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97개국에서 긴급사용허가를 받아 예방접종에 활용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3월 5일 화이자 백신에 품목허가 결정했다.
정윤택 원장의 말이다.
앞으로 화이자 측은 위탁생산 확대를 통한 추가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출 가능성이 높아요. 이러한 대량 생산은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죠. 그렇게 되면 백신 접근권이 낮았던 국가의 백신 구매 부담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화이자 백신을 필두로 외산 백신의 글로벌 시장 독점은 백신 산업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해외 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산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야한다”며 국산 백신 개발을 독려한 바 있다.
국내 백신 개발 선두는 SK바이오사이언스다. 회사의 ‘GBP510’ 백신은 이달 10일 식약처로부터 3상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개발 완료 목표는 내년 상반기다. 이밖에도 유바이오로직스, HK이노엔,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큐라티스, 셀리드 등 6개사는 현재 임상 1/2상을 진행 중이다.
아쉬운 점은 국산 백신 개발 목표는 전 국민 접종과 부스터샷 등 시급히 요구되는 백신 물량의 원활한 공급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백신 자국화에 따른 내수용 물량 확보가 충분해지면 장기적으로 수출 등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이 이어져야 국내 제조사의 제2, 제3의 차세대 백신 개발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외시장 ‘노크’는 이른바 ‘백신 외교’의 관점에서도 필요하다. 이미 중국은 자국의 시노백을 백신 외교의 일환으로 활용 중이다.
나는 정부에 장기적인 관점의 글로벌 진출 전략이 있는지를 물었다. 정부 당국자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당장은 품질의 우수한 제품이 개발되도록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있어요. 개발 이후 세계적인 방역 상황과 개발 동향을 검토하면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정윤택 원장으로부터 대응 방안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WHO Pre-Qualification)를 통한 백신 대외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국산 백신이 개발돼도 곧장 FDA 및 EMA 승인 취득은 쉽지 않아요. WHO PQ를 선제적으로 추진한 다음에 백신이 시급히 필요한 제3국을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데이터가 쌓이면 차차 미국·유럽 쪽의 허가를 받아 국산 백신을 세계 시장에 확대할 수 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혹은 사족)
나는 직업 상 전화 인터뷰 요청을 할 때가 다반사다. 그 경우 가급적 상대의 상황을 배려한다는 게 나만의 철칙이다. 특히 전문가 견해를 들어야 할때는 상대가 바쁘거나 해서 조금이라도 폐를 끼칠 것 같으면 인터뷰를 포기할지언정 무리해서 그들의 시간을 뺏지 않았다.
의학기자인 탓에 인터뷰이는 정부 관계자나 의사, 과학자, 학자, 국회의원 등 전문가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전활 걸면 바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친절하게 받아주면 고맙고, 반대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바쁘면 짜증도 나고 그러니까 말이다. 기자가 뭐라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고마울 뿐이란 생각이다.
그렇다고해서 내 시간이나 내 기사가 그들의 일보다 결코 가볍거나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상대의 시간을 아껴주고 싶어 그리하는 것일뿐이다.
배려를 한다고 하는데 더러 씁쓸한 일을 겪기도 한다. 흡사 잡상인 취급을 하는 것인데 썩 유쾌하진 않다. 위의 글을 쓸때도 그랬다.
백신 분야 국제 기구 소속 인사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는 회의 중이라고 했다. 알겠노라 끊으려 하는데 그가 말했다.
"중요한 일 아니면 끊읍시다"
몇 번의 경험에서 해당 인사나 그 기관의 태도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금 마음이 상했다. 물론 그의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했다. 그렇지만 내가 전활한 이유가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각자 자기 세상을 산다. 웃을때도 찡그릴때도 있다. 사회부 10년을 거치며 이런 일은 이골이 났다고 여겼는데 종종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전문가주의에 약간 냉소적인 입장이 되는 것은 언론이 많이 찾을수록 고압적인 태도로 변하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한 탓도 있다. 그래서 정 원장의 친절한 설명이 더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