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음악은 꽝이잖아요?
십여년 전 한 장애인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관객이 나가고 무대에 불이 꺼지자 동석했던 클래식계 인사가 눈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무대에서는 ‘감동의 무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떼어지고 있었다.
시작은 공연 포스터 한 장이었다. 청각 장애 발레리나와 시각 장애 연주자 2명이 오르는 무대.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이야기>였다. 병사이야기는 “일반 연주자에게도 상당한 난이도”로 악명이 높은 작품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들의 마지막 연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저 그런 ‘감동의 무대’려니.
예상은 빗나갔다.
클래식에 기술이 더해졌다. 기술, 사람, 스트라빈스키가 만났다. 장애는 첨단 기술로 극복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늦은 오후. 땅거미가 지자 서리풀악끼거리에도 하나, 둘 등이 켜졌다. 거리 한 켠 오케스트라 홀은 한참 전부터 불을 밝혀두고 있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이야기 공연까지는 이틀이 남아 있었다. 병사이야기는 바이올린·클라리넷·바순·트럼펫·트럼본·더블베이스·타악기의 비교적 단촐한 악기 구성으로 이뤄져 있지만, 연극, 춤이 어우러진 음악극이다.
연습 시간이 가까워오자 연주자들도 하나, 둘 도착했다. 오후 7시 50분 지휘자가 도착했다. 지휘자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더니 악보를 폈다. 그런데 오른손에 쥔 지휘봉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휘봉에는 전자 수신기가 장착돼 있었다. 지휘봉과 연결된 선은 지휘자의 팔에 단단하게 고정됐다.
그것은 버즈비트라는 지휘봉이었다. 지휘자의 움직임은 진동으로 바뀌어 수신 감지기를 장착한 연주자와 무용수에게 전달된다. 전달은 세밀하다. 박자, 속도, 강약, 볼륨까지도 가능하다. 지휘는 전기 신호로 바뀐다. 때론 강하고, 때론 약하게. 시각 및 청각 장애인 연주자는 지휘자의 섬세한 지시를 즉각 알아듣는다. 눈과 귀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 한계돌파다.
연주자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이리저리 조율을 계속했다. 이내 홀에는 여러 악기가 만들어낸 소리로 가득했다.
8시 5분 준비가 끝났다. 연주자들이 일제히 지휘자를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 홀을 가득 채운 소리가 일시에 사라지자 적막감과 함께 긴장감마저 가득했다. 지휘자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버즈비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했다.
“바로 쭉 할까요? 시작은 바이올린으로 하고 나머지 악기가 맞추는 것으로 하죠.”
지휘자가 연습을 중단시키더니 트럼펫과 트럼본 연주자를 보면서 말했다.
“테스트를 몇 번 해볼게요. 준비가 다 되면 고갤 끄덕이면 제가 그걸 보고 지휘를 할게요.”
다시 지휘와 연주가 이어졌다. 내레이션이 시작됐다.
먼지 자욱한 길을 해치고 병사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그에게는 십 일의 휴가만이 남아있다.
언제쯤 집에 다다를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여행을 하는 지친 모습으로
병사는 터벅터벅 걷는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의 얼굴은 웃음기가 가신지 오래. 작중 병사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이마에선 땀이 한 방울 주르륵 떨어지더니 안경에 맺혔다.
극에서 병사의 연주는 악마를 매료시킨다. 악마는 병사를 꼬드겨 미래를 보는 책과 바이올린을 맞바꾼다. 사흘 동안 악마에게 바이올린 켜는 법을 알려준 병사는 고향에 돌아와 사흘이 아닌 삼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규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다시 지휘자가 연주를 끊더니 트럼펫 연주자에게 말했다.
“현악기가 나오면 그때부터 준비를 하면 됩니다.”
다시 내레이션.
병사는 살아서도 죽은 사람이었다.
(중략)
돈이 쌓일수록 왠지 모를 분노와 허망함도 함께 쌓인다.
지휘자가 연주자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저희는 연주가 중요하니까 헷갈리거나 합이 맞지 않는 위험성을 줄여야 합니다. 자, 다시 한 번 해봅시다.”
내레이션도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내레이터가 악마의 외마디를 토해냈다.
“명심해 성을 벗어나는 순간 너는 다시 내 손바닥 안이라고. 알겠어!”
마지막 연습은 어느덧 2막 종반부를 향해갔다.
버즈비트.
지난 2015년 작곡가 롤프 게하(Rolf Gehlhaar)가 고안하고, 휴먼인스트루먼트가 개발한 이 특별한 장치는 지휘의 복잡함을 고려해 진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다. 비장애인은 버즈비트를 착용해도 신호의 민감성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과 같이 다른 감각이 예민한 연주자들은 이 신호를 기민하게 인지할 수 있다.
지휘봉·송신기·수신기의 사용 비용은 600만원~700만 원가량이 든다. 착용해야하는 연주자가 많아지면 수신기도 더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높아진다. 때문에 아직 상용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발에 참여해 온 이는 버즈비트를 활용한 공연을 여러번 만든 적이 있다. 이런 그에게도 병사이야기는 큰 모험이었다. 그는 “사심을 담았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베토벤 5번을 연주했어요. 이번에는 연주자의 테크닉에 중점을 두고 싶었어요. 병사이야기는 연주자라면 한번은 해봐야 하는 작품이에요. 마침 올해가 스트라빈스키 사후 50주년이기도 했고요.”
병사이야기 공연에는 청각장애 안무가와 시각장애 연주자들(트럼펫, 트롬본)이 참여했다. 청각장애 예술인이 참여하는 첫 버즈비트 공연인 셈이었다.
병사이야기에 참여한 연주자와 안무가들은 장애를 극복한 감동의 무대 따위를 원하지 않았다. 그동안 국내에서 장애인이 참여하는 공연은 완성도 대신 장애의 극복에 초점이 맞춰진 측면이 많았다. 이들이 병사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선입견을 깨려는 데 있다.
병사이야기는 1918년 작곡된 이래 스트라빈스키 작품 중에서도 높은 난이도로 악명이 높다. 특이한 편성과 음악적 구성, 표현으로 클래식 마니아라면 관심이 많은 작품이지만, 국내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이 공연을 기회가 적었다. 연출감독이 말했다.
“장애인 연주자들도 이 어려운 레퍼토리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험난했다. 시각장애인 연주자를 위한 점자 악보를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악보를 점자로 번역하는 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을 포함해 3곳이 전부다. 병사이야기는 난이도가 높아 점자 악보로의 번역 작업에 오랜 기간이 걸린다. 그래서 번역기관들도 난색을 보였다.
버즈비트의 기술력을 빌어 한계를 극복한다지만 종국에 연주와 협연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시각장애 연주자들이 악보를 모조리 암기했다. 지휘자는 유래가 없는 시도라고 했다.
“음악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작품을 외워서 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어요. 이런 시도를 과연 전 세계에서 한 적이 있었을까요?”
연습이 이어졌다. 지휘자는 대사와 연주가 맞물리는 부분을 만족스럽지 않아했다. 내레이터와의 상의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악마의 노래’ 부분에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왜 트럼펫을 망설였어요?”
“아, 그런가요?”
“더 박차고 나가도 좋아요.”
병사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병사는 모든 것을 악마에게 빼앗긴 채 악마를 따른다. 병사는 악마를 향해 천천히 빨려 들어간다. 병사는 서서히 멀리 사라져간다. 이때 흐르는 ‘악마의 개선 행진곡’. 고조되어 가는 타악기의 연주가 별안간 툭 멈추며 허망함과 여운을 준다. 그렇게 연습도 얼추 끝이 났다. 그렇지만 정해야 할 것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어떻게 신호를 할까요?”
타악기 연주자가 물었다.
“옆에서 툭 쳐주면 안돼요?”
연습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웃음.
“그냥 뒤통수를 쳐도 돼요.”
“앉아서 악기를 튜닝 하다가 지휘자님이 무대로 들어오면 그때부터 준비를 하면 되죠?”
“옆에서 같이 숨을 훅 쉬어서 신호를 줘야죠!”
다시 웃음. 교통정리는 지휘자의 몫이었다.
“전 무대에 오르면 버즈비트를 차야하니까 바쁠 거예요. 그때 긴장 팍 하시고. 테스트를 한 다음에 제가 작게 신호를 보낼게요. 그리고는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검은 셔츠 차림의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조명에 부딪혀 무대를 빙글빙글 돌았다. 연주자들 사이로 흰지팡이(시각장애인용 지팡이)가 언뜻 보였지만, 그것에 관심을 두거나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지휘와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그리고 내레이터의 대사.
먼지 자욱한 길을 헤치고 병사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악마와 병사의 일대기가 음악과 춤에 어우러져 한 편의 비극적 서사가 완성됐다. 한계를 돌파하려는 사람의 희망 혹은 욕망은 스트라빈스키의 선율을 재현해냈다. 관객들은 무대로 빠져들었다. 모든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무대 조명이 모두 꺼질 때까지.
사람이 기술을 만나고, 기술이 클래식을 만났다. 어떠한 선입견도, 편견도 없었다. 그날 무대에는 스트라빈스키의 명작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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