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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May 06. 2022

너희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소, 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닷페이스’가 문을 닫는다. 주목받던 밀레니얼 미디어, 각종 수상과 이슈를 선점했던 뉴미디어 실험의 ‘안녕’이다. 명확한 방향성, 고품질의 콘텐츠, 깊이 있는 시각. 비록 지향점의 호불호는 있었지만, 닷페이스의 해산을 바라보는 언론계의 감정이란, 안타까움이나 쓸쓸함을 넘어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먼저 보는 듯 한 불안인 것 같다. 미디어의 지속가능함이란 난제. 좋은 콘텐츠가 지속가능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정한 현실. 그리고 돈, 돈, 돈.


언론사 소속 기자이자 1인 미디어로 몇 년 동안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메이저에서 비껴난, 색다른 시각을 가진 1인 미디어와 대안미디어 종사자들과 나는 종종 술을 마셨다.      


취재 열정은 그득한데 돈은 없어서 쪼들리는 생활, 취재현장에서 주류 언론의 텃새... 술자리 화제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월급을 받으며 ‘이중생활’을 하던 나와 달리 그들은 자신의 삶을 태워가며 저널리즘에 대한 무모하리만치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이중생활을 그만 둔 건 취재 분야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홀로 뒷골목을 배회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특히 집회 취재가 많았다. 물 폭탄에 장맛비까지 쫄딱 맞으며 광화문 어딘가 뒷 골목을 걷고 있자니 소위 ‘현타’가 왔다. 나는 그 적적함이 싫었다.      


이후 5년, 기자상도 여러 번. 나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했다. ‘마이너 언론인’의 물은 이제 다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게 날개를 달아준 회사가 최고라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걱정하지만 대체로 즐기고 있다      


수상소감으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름 뼈가 섞인 말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나는 회사를 관두었다. 그 회사에서만 사표를 두 번 썼다. 첫 번째는 ‘개인사유’라고만 적었다. 딱히 대안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사직서 수리 대신 나는 신설 팀을 맡게 되었다. 실험적인 팀, 유튜브를 활용하자는 이야기. 나는 알았노라 했다. 조건은 두 개. 충분한 시간을 주고 내버려둬라. 그럼 알아서 해보겠다.  물론 알았다. 돈도, 조회 수도 보장되지 않은 유튜브 저널리즘. 유튜브로 다큐를 계속 만들 수 있도록 과연 회사가 기다려줄까. 여하튼 나의 퇴사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새로운 팀은 스타트업처럼 조직하고 싶었다. 의사결정은 빠르되 가장 좋은 것이 선택되어지도록 하는 것.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로이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 회사에 없는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6개월이 걸렸다. 나와 팀원들은 1/n씩의 역할을 맡고, 난 거기에 두 개 더, 책임과 밥값을 부담했다. 기똥찬 아이디어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우리 팀은 제2의 닷페이스로 불렸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상을 해부하듯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공부'를 하며 나는 팀원들과 작은 씬 하나라도 공들여 다큐를 만들었다.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상을 받았다. 함께 수상한 매체는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곳들이었다. 흡족했다.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줄 수 있어 기뻤고, 적은 월급에도 이력에 남을만한 것을 만들어주어 다행이라 여겼다. 한편으론 팀이 유지될 조금의 시간을 벌었다고 안도했다.


촬영을 해야 하는데 변변찮은 카메라 하나가 없었다. 구매 결제를 위해 지난한 설득을 해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팀원들이 지치는 꼴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장비 구매는 대부분 내 개인 돈으로 충당했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나는 일에 빠져 있었다.      


사실상 팀은 방치되고 있었지만, 우리가 만든 영상에는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기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사실 지치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사직서에 팀원들을 잘 부탁한다고 썼다. 그리고 휴가를 쪼개 마지막 다큐를 만들고 회사를 떠났다. 일 년 만에 대다수 팀원들은 회사를 떠났다.     

   

결국 뉴미디어도, 레거시 미디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였다      


조직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언론인은 종종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조직에 순응할 것인가,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소신을 소위 '꼴리는 대로' 밀어붙여볼까. 혹자는 말한다. 조직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과 같은 멋진 실험도 지속 가능한 혁신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이나 코로나19 백신 트래커는 한 기자의 아이디어를 편집국이 믿고 밀어줘 가능했다고.  


우리나라의 대다수 언론사는 그렇지 않다. 거의 매번 위에서 정한 것이 아래로 지령처럼 떨어지는 구조다. 하단부에 위치한 기자는 자신이 하려는 저널리즘 실험이 왜 필요한지를 윗선에 별의별 수를 다 써가며 설득해야 한다. 이 과정은 좋게 말해 논의이지만, 실은 사내정치와 타협이다. 이게 무서운 젊은 언론이들은 자기검열과 '삐딱선'을 타지 말고 시키는 것이나 조용히 하자고 처음의 의욕과 의지를 알아서 포기해버린다.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리면 당장 성과 잣대부터 들이대고 지속할 수 있느냐는 '잔소리'부터 듣게 된다. 실험의 결과가 예측이 안 되니 하던 것이나 잘하라는 '충고'는 덤. 물론 조직의 무력감과 보수성은 결코 논의되지 않는다. 실험이 가져올 신선한 변화도 고려되지 않는다. 혁신을 말하는 언론은 정작 스스로 전혀 혁신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다.


기업과 종종 만날 때면 홍보맨의 연령이 현저히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한창 현장을 뛸 젊은 언론인들이 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기자에서 홍보맨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언론 조직에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젊은 언론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닷페이스의 6년만의 해산. 그들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언론계의 씁쓸함. 혁신이란 도무지 요원한 언론 시스템 아래에는 고민에 빠진 젊은 기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뉴미디어라면 가능하겠다고 여긴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닷페이스에서 보려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들조차 현실의 벽에 부딪쳐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침통함, 어떤 울컥하는 감정.       


난 닷페이스의 자유로움과 창의력, 상상력, 세련됨이 부러웠다. 한때는 그들을 이겨보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이 있어서 좋았다. 지금까지 길게 쓴 글은 사실 그들에게 전하고픈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일 것이다.


굿바이, 닷페이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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