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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Sep 10. 2022

가슴이 뛴다고 병에 걸린 건 아니니까 [소,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나이가 드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 별로 없다. 이 나이에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게 심부전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런 감각은 불청객 같다고, 흔들리기 싫어서 마음을 접고 내려놓고 '여기까지만을' 외치기도 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게 무모하다고 여기면서 실패할때의 지겨움이 떠올라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무언가를 해보려 할 때 멈칫 하는건 나이가 들어서라기 보단 실패가 반복될까 싶어서일 것이다. 실패가 두렵진 않지만 실패하는 것은 지겹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난 그 날 실패한 취재를 떠올리곤 한다.


그날 2014년 5월의 일이었다. 전남 진도 팽목항에 위치한 가족대책본부. 그 옆에 세워져있는 화이트보드에 ‘243번째 수습된 희생자’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잠시 후, 단발머리의 소녀가 달려왔다. 전화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었다.


소녀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소녀는 신원확인소로 걸음을 옮겼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자칫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소녀가 자리를 떠나자, 모여 있던 누군가는 눈물을 글썽이고, 또 다른 이는 한숨을 쉬었다.


한참 후 진도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희생자의 언니가 오열하자, 주변은 울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그날 밤 소녀를 다시 만났다. 소녀 주위로 카메라와 수첩을 든 기자들이 서성거렸다. 어떻게 하면 소녀와 인터뷰를 성사시킬지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언론마다 혈안이 되어 있던 것은 실종자 및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따내는 것이었다. 위에서 시키니 무리해서 취재를 하게 되고, 보도 경쟁이 극심하다보니 검증 안된 보도와 사실을 왜곡하는 뉴스가 쏟아졌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언론의 신뢰가 지금처럼 추락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세월호 참사 취재 당시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바로 뉴스를 쓸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인터뷰에 실패했다. 그리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 잘한 게 있다면, 동생을 잃은 소녀의 마음을 후벼파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 날 바람불던 팽목항의 밤. 어떻게 하면 동생을 잃은 소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할까 전전긍긍하고 고민했던 그 밤. 적어도 사람냄새를 잃지 않으려던 그 밤과 실패한 취재. 그때 일을 떠올리면 나는 과연 지금 가슴 뛰는 일을 실패할까 주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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