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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Aug 22. 2022

정신응급실 24時


“응급실에 온 정신질환 당사자와 처음 만나는 자리는 항상 어렵죠. 환자와의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가 미처 만들어지기 전이니까요.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긴장도 많이 되지만 자부심도 커요.”      


서울 광진구의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응급진료실. A간호사가 눈을 찡긋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정신응급진료실은 흔치않다. 일반적인 대학병원의 응급실과는 여러면에서 다르다. 운영 방향도 다르다. 정신응급실은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일부 국립의료기관에서 시범운영하고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퍽 생소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의료진은 “새로운 시도”라며 뿌듯해했다.       


“정신응급진료실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주도하는 응급진료와는 달라요. 정신과 진료 중에서도 응급파트에 해당되는데, 자·타해 등 정신과적 긴급 상황을 대응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죠.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주간에 내원하지 못한 당사자가 야간 및 주말에 진료를 받을 수 있어요.”

     

정신응급진료실에는 매일 다양한 환자들이 찾아온다. B간호사로부터 자해를 하던 청소년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십대 청소년이었는데 가출 후 성매매를 하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왔어요. 우울감 때문에 자해를 하고 있었어요. 정신응급진료실에 오는 십대, 이십대 당사자들 중에 자해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응급 상황 안정되고 만나보면 하나같이 순하고 착한 아이들이에요.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할 때면 뿌듯하지만, 다시 병원에 올 때면 마음이 아파요.”     


정신질환 당사자의 보호자, 특히 부모는 자녀의 상황을 본인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C간호사의 말.  

    

“한 어머니는 집 한 채 밖에 남지 않아 그나마 진료비가 저렴한 국립의료기관에 왔다며 눈물을 쏟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안좋았어요.”     

사진=김양균의 코드블랙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응급진료실에서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단기입원 병상’은 여러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는 사흘간 환자의 경과를 보고 퇴원이나 병동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 이것이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민간 정신건강 의료기관 대부분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자·타해 등 응급 상황에 일차적으로 투입되는 구급대원이나 경찰관들은 정신질환 당사자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갔다가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사흘간 안정화 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최선이지만, 일선 병원에서는 의료수가를 이유로 실천이 잘 되지 않았어요. 이제 정신질환 당사자의 사회복귀가 중요하다는 교과서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신질환 당사자 중에서 가족 등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는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을 통한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행정입원은 절차적 어려움이 있어 많이 활용되지는 않는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행정입원이 가능한 병상 규모는 1000여 병상. 정신의료기관이 아닌 곳은 서울의료원 외에는 없다.     


정신응급진료실과 같은 시스템이 일선 의료현장에 도입되려면 난관이 많다. 당장 돈이 많이 든다. 내가 만난 의료진들은 ‘환자 존중’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이것이 마냥 의료진이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의료진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환자 존중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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