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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18. 2022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①

   

7시간을 머물러야 했던 홍콩국제공항은 일부 면세상점이 운영되고 있을 뿐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모습은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 공항은 작은 차이는 있어도 사정은 매한가지였을 터였다. 2022년 10월 5일 인천에서 홍콩을 거쳐 이스라엘로 향했다.


하필 결혼 후 처음 맞는 아내의 생일과 출국일이 겹쳐 평소 나를 응원해주던 아내도 이번만은 몹시 서운한 모양이었다. 더욱이 국정감사 기간이 출장일과 겹쳐 자비와 휴가로 어렵사리 가게 된 팔레스타인행이건만 나는 이래저래 남겨둔 이들에게 몹쓸 놈이 되었다.


취재 현장이 멀고 고생스러울수록 기사의 품질은 이와 비례해 높아질 확률이 높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는 보건·복지의 눈으로 본 팔레스타인 인도주의 위기를 조명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그게 가능할지는 당사자인 나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비행기는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by 코드블랙


2022년 10월 6일 오전 7시(현지시각) 벤구리온 공항. 안면인식으로 비자가 즉각 발급됐다. 편리하면서도 좀 깨림직했다. 이어 대면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출국이 까다롭다보니 알아서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입국 심사대에 걸린 ‘웰컴 투 이스라엘’이라고 쓰인 대형 입간판과 내가 본 현실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485번 버스로 한 시간여를 달려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여기서 ‘센트럴 스테이션’ 트램역에서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인파로 거리는 활기에 차 있었다. 남녀 젊은이들이 황토색 군복에 총을 메고 서로 포옹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모습이 생경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인근의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역까지는 10분 남짓. 다마스커스 게이트역은 악취가 나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등 쾌적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의 주요 도시로 가는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나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대도시 라말라(Ram Allah)로 가는 버스를 탔다.


트램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나를 포함해 매우 극소수였다. 이곳은 이미 코로나19가 끝난 분위기였다. 초반에는 사람이 몰린다 싶으면 마스크를 꺼내 쓰곤 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지에서 만난 한 팔레스타인 사람은 웃으며 “유, 마스크!”라며 나를 놀렸다.  


라말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중심으로,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궁과 팔레스타인 입법위원회 등 대부분의 행정기구가 이곳에 있다. 각국 기업과 국제기구도 위치해 있기 때문에 행정수도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코이카도 이곳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by 코드블랙


버스가 칼란디야 체크포인트(Kalandya check point)에 다다르자 혼잡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서안에서 예루살렘으로, 내 버스처럼 예루살렘에서 서안으로 나가려는 차들로 도로는 이미 검문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정체 상태였다. 동행한 사단법인 아디의 이동화 활동가는 이러한 검문과 통제가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크다고 말했다.  


한 시간이 조금 못 되어 버스는 라말라 시내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인도는 오가는 이들로 북새통이었다. BTS의 영향력인지, 다가와 인사를 하는 여학생들도 있었으니, 삼년 전 나만 보면 ‘니하오’라고 놀리듯 말을 걸던 상황과는 딴판이었다. 후에 만난 헤브론 남부에 위치한 마사파 야타(Masafer Yatta) 지역에 속한 아투아니 마을의 사미 하 후레이니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BTS만 있으면 외교는 끝이겠거려니 싶어서 나는 혼자 웃었다.


오후 3시 (팔레스타인정부의) 준정부기구인 팔레스타인고용펀드(Palestine Employment Fund, PEF)의 칼리드 알리 나세프(52)와의 미팅이 잡혀있었다.


인파를 뚫고 라말라 중앙광장의 사자조각상을 보자, 그제야 팔레스타인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사자조각상을 중심으로 원형교차로가 있었는데, 차도에는 차만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교차로를 막고 유턴을 하거나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에서 내려 악수하는 사람, 인도처럼 차도를 누비는 일반 보행자 등등. 몇 번을 보았지만 그들의 운전 매너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들 삶의 방식 일부였으므로 이방인인인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by 코드블랙


사자조각상 인근의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2층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점심때를 지나고 있었다. 장거리를 이동하느라 몹시 허기가 졌다. 샤와르마(Shawarma)는 메뉴에 있었지만 주인장은 “온리 후라이드 치킨”이라며 강짜를 부렸다. 더 비싼 치킨 조각을 팔 작정이었던 게다. 치킨 다섯 조각에 콜라 두 잔을 주문하자, 제법 거창한 상을 내왔다. ‘호브스’라는 아랍빵이 나오고, 치킨에는 붉은 가루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양배추를 얇게 저민 샐러드도 함께. 아쉬운 대로 빵에 샐러드와 닭고기 살점을 얹어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얼추 식사가 끝날 무렵, 칼리드가 나타났다. 한국 담배를 권하자 그는 웃으며 담뱃불을 붙였다. 칼리드가 이동화 팀장과 일정을 조율하고 담소를 나누는 동안 나는 창으로 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미국식 시장주의, 팔레스타인에 스며들다     


택시를 타고 칼리드가 일하는 팔레스타인고용펀드(Palestine Employment Fund, PEF) 사무실로 갔다. PEF는 지난 2003년에 설립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준정부기구다. 설립 초기에만 해도 제한적 활동을 했지만, 2021년 PA와 협약을 맺고 준 정부 기구로 승격됐다. PEF는 정부·기업 및 조직의 임금을 지원(차등적으로)한다. 구직자의 채용 및 한시적 임금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지원 분야는 ICT·산업·농업 분야 등 다양했다. PA와 외국 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구직자 역량 강화 지원도 맡고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곳에서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 고용 창출 효과도 내고 있다는 게 칼리드의 설명이었다.


펀드 규모는 2021년 기준 70만 달러(약 9억 원)였지만, 올해는 크게 늘어 월드뱅크에서 1100만 달러, 아랍펀드 200만 달러, 이탈리아 800만 달러, 독일 정부 600만 달러, 벨기에 150만 달러 등 총 3천만 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펀드 출자는 PA가 20%, 민간 20%, 국제기구 및 단체 60% 등으로 국제펀드에 상당수 의존하는 형편이다. 기금 구성 비율은 조금씩 변화가 있다고 칼리드는 말했다.      


칼리드는 PEF에서 모니터링·평가(Monitoring and evaluation, M&E)와 펀딩이 기획에 맞게 운용되었는지, 또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불법으로 고용되거나 아동노동 등 불법적 상황에서 구직 의견 수렴이나 이를 해결하는 것도 그의 업무였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by 코드블랙


“지원 대상은 대학졸업자 이상만 해당되나요, 성별 및 학력 기준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학력, 나이, 성별 제한은 없습니다. 우린 구직자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주고, 구인을 희망하는 기업과 기관과의 매칭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월드뱅크 지원 기금으로 진행된 사업으로 6개월 동안 3632명이 새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9월 1일 기준).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직한 상태였죠.”     


“2021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협력을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팔레스타인의 실업률과 같은 경제 사정을 PA도 인지했기 때문에 성사된 것이라고 봐도 됩니까?”


“정확합니다. 코로나19 이후 구직난과 실업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정부 차원에서 실업 해소 조치의 일환으로 우리와 협력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일자리의 질은 어떻습니까?”     


“시간제를 포함해 교육·보건·사회복지 등 다양합니다.”     


이 지점부터 나는 정말 알고 싶은 것을 묻기로 했다.       


“팔레스타인의 현재 보건의료, 일자리와 거주를 포함한 복지 상황은 냉정하게 어떤 상황이라고 보나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는 보건의료의 취약성을 드러냈습니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였지만, 주요 원인은 내부 상황에 기인한 측면이 큽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인의 상당수(그는 70%라고 했다)가 현저한 의료 접근권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운영하는 검문소와 같은 각종 제한 조치 때문에 보건의료시설로의 접근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요르단 등 외부 의료기관으로도 나가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죠.”     


베이트 프릭 체크포인트 by 코드블랙


앞에서 칼란디야 체크포인트(Kalandya check point)의 번잡한 도로 사정을 소개했다. 이와 같은 체크포인트는 팔레스타인 각지에 분포해 있다. 또 이스라엘 정착민이 집단 거주하는 유대정책촌 인근에는 군대가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주둔해있고, 이들은 도로를 차단하거나 불시 검문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교통을 통제했다.


나는 팔레스타인 체류 당시 하루 동안 동예루살렘(Eastern Jerusalem)에서 출발해 베들레헴(Bethlehem)에서 남부 헤브론의 마사퍼 야타(Masafer Yatta) 지역 내 소규모 마을을 방문하고, 다시 헤브론(Hebron)에서 라말라(Ram Allah)를 가서, 여기서 차를 갈아타고 나블루스(Nablus)까지 이동한 적이 있다. 동예루살렘 셰이크 자라에서 베들레헴까지는 버스로 50분이 걸렸고, 마사파 야타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헤브론까지는 자가용으로 30분, 이곳에서 라말라까지 승합차로 2시간이, 다시 나블루스까지는 1시간이 더 소요됐다.

  

검문소 외에는 별다른 불시 검문이 없었음을 고려한다고 해도 직선도로 대신 에둘러 지방국도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배로 걸리고, 검문이 이뤄진다면 시간은 기약 없이 지체될 수 있다. 때문에 이곳에서의 약속은 늘 변동 가능성이 있었다. 이게 그들의 일상이었으니 검문소에서 출산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장도 일견 납득이 됐다. 심각한 교통사고나 재해, 총격 등의 사고를 당한 팔레스타인인 중증외상환자의 이송은 과연 골든타임 내 가능할지 궁금했다. 다시 칼리드의 말.

     

by 코드블랙


“팔레스타인정부(PA)의 예산이 너무 부족하고 예산 운영도 부실한 부분이 있어요. PA가 실시하고 있는 보건의료 서비스는 팔레스타인인 70% 가량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가 PA가 아닌 이스라엘을 포함한 해외 원조에 사실상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팔레스타인 정부 예산이 세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파리협정에 따라 걷어 들인 세금은 이스라엘이 걷은 후 팔레스타인 정부로 양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가 전체 세금을 주지 않아 현재 PA 공무원들은 임금의 80%만을 받고 있습니다. 보건복지 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죠."


이스라엘은 1994년 파리협정에 의거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대신해 걷어 들인 관세와 통행세 등 세금을 매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송금한다. 이스라엘이 PA의 국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문제가 있을 때 세금 전달을 여러 번 중단했다.

      

“그렇지만 정책은 이러한 변동을 감안해서 수립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PA가 보건의료와 같은 취약한 분야를 더 신경쓰고 정책을 수립해야 했음에도 공공성을 시장에 맡겨버렸습니다. 제대로 된 정책은 없었습니다. 공공정책 자체가 부재했어요. 기업 활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식 모델을 정부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by 코드블랙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헬스케어 분야를 포함해 미국식 시장우선주의가 팔레스타인에서 가속화되었습니다. 교육, 보건의료, 경제 등 팔레스타인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던 산업계가 이전에는 무상으로 지원하던 서비스를 팬데믹 이후 끝내버렸어요. 팬데믹을 계기로 시장도 소비지향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부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 대신 손쉬운 선택을 하자 팔레스타인인의 개인주의도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습다. 독점적 지위를 보유한 민간의 플레이어가 새로운 통제자가 된 겁니다.”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팀장도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사람들은 점령의 피해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요. PA는 전 세계로부터의 지원금을 받고 있음에도 내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칼리드의 지적처럼)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민간 자본의 이익 극대화에 편승해 있지요. PA의 정책은 많은 부분에서 자국민의 보호와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죠.”    

 

이후 나는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 분야에서 PA의 무능과 이스라엘 점령이 초래한 비극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인근 부린마을에 설치, 운영되고 있는 보건소의 녹슨 간판. 팔레스타인 보건부 명칭이 선명하다. by 코드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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