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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24. 2022

앳투와니의 수난이대(受難二代)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 ②


2022년 10월 7일 오전 동예루살렘(Eastern Jerusalem)에서 도심 트램으로 두 역이 떨어진 예루살렘 올드시티 인근의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 역으로 향했다. 이곳의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베들레헴의 검문소 300(Checkpoint 300 in Bethlehem)까지 버스로 30~40분을 더 달렸다.


2005년 설립된 검문소 300은 이스라엘군의 주요 검문소 가운데 하나이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여러 관광지를 향하려면 검문소 300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한번은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한 명씩 통과할 수 있는 보안회전문과 성인 세 명이 나란히 지나기 어려운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로 혼잡함과 긴 대기시간으로 이곳은 악명이 높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인 하레츠는 “검문소 300에 도착하는 순간 하루를 잃어버리게 된다”며 “밀집한 인파가 콘크리트와 금속 막대로 둘러싸여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대기 시간 감소를 위해 생체 인식 판독기를 설치하는 등 시설 개선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이곳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존재한다. 주된 이용자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by 코드블랙


검문소 300 입구에는 본보야지(Bon Voyage, 좋은 여행이라는 프랑스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가 병기되어 있었는데 검문소300은 좋은 여행의 관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한 명밖에 통과할 수 없는 철로 만들어진 보안회전문을 통과하면 L자형의 경로로 만들어진 통로가 15~20미터 가량 이어졌다. 시멘트 바닥 위로 벽의 회색 페인트는 먼지와 검은 얼룩이 있었고, 다시 붉은 페인트가 통로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층높이가 높고 진행하는 방향의 오른쪽에 설치된 창문들은 복도를 이어지며 설치돼 있었지만 잠겨있었다. 통로를 지나면 넓은 대기 공간이 있었고, 여기에서 두 번째 보안회전문을 지나야 검문소 300을 마침내 통과하게 된다.


by 코드블랙


다행히도 그날 사람들이 적어 수월하게 검문소를 지날 수 있었다. 검문소 300을 나서자 도로에는 오물과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구정물이 고여 있었다. 관광객을 태우려는 택시기사들은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를 태우러 올 차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트리 레스토랑이란 현지 식당에서 콜라를 시키고 앉아 있으려니 팔레스타인인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남부 헤브론의 마사파 야타(Masafer Yatta) 지역으로 가자고 하니, 그가 고갤 갸웃했다. 알고 보니 차에 태워야 할 관광객들과 나를 헷갈렸던 것이다.


당초 나를 태우기로 한 SUV가 건너편 도로에서 경적을 울렸다. 차에는 먼지가 잔뜩 끼여 있었다. 차는 빠르게 도심을 빠져나갔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고대도시 헤브론의 남부에는 소규모 마을들이 모여 있는 마사퍼 야타(Masafer Yatta) 지역이 위치해 있다. 마사퍼 야타 지역의 남동쪽 앳투와니(At Tuwani) 마을이 내가 갈 곳이었다.


일행을 데리러 온 하페즈 후레이니(52)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재배하는 농부였다. 그는 두 팔에 깁스를 하고도 능숙하게 차를 몰았다. 운전자에 불과한 줄 알았던 그는 알고 보니 꽤 유명한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가라고 했다. 하페즈는 최근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주었다.   


by 코드블랙


습격     


2022년 9월 12일 자신의 농장에서 일을 하던 하페즈에게 철제 막대와 총을 든 5명의 사내들이 다가왔다. 무리에는 앳투와니와 불과 1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스라엘 정착촌 ‘마온(Maon)’의 정착민과 하바트 아웃포스트(Outpost, 전초기지) 출신이 섞여 있었다. 이전에도 땅·도로·물을 두고 정착민들의 공격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은 더 직접적이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곳곳에 위치한 아웃포스트, 일명 ‘하우스홀드(Household)’로도 불리는 이스라엘인 거주지는 승인 없이 건설 된 불법 유대 정착지이다. 유대 정착촌이 이스라엘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는 하나 피점령지 내 점령국의 거주지 건립은 국제법을 어긴 것이다.


아웃포스트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승인한 정착촌과는 구별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웃포스트를 폐쇄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지만, 실제 폐쇄된 곳은 많지 않다. 현재 서안지구 전역에는 수백 개의 아웃포스트가 존재한다.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방화나 경작지인 올리브 나무 훼손 등 물리적, 금전적, 정신적 폭력 사례는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군의 비호가 있어서 적극적 대응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무리 중 하나가 막대를 내리치자 하페즈는 이를 두 팔로 막다 부상을 입었다. 딸 사미 하 후레이니는 아직 바위 위에 남아있는 핏자국을 보여주었다. 피는 햇빛에 말라붙어 검은 얼룩으로 남아있었다. 사미가 마온 정착촌을 가리키며 말했다.      


“등하교 하던 한 아이는 정착민에게 얼굴을 맞아 이주일 동안 입원한 적도 있어요.”      


by 코드블랙


하페즈도 수중에 있던 삽을 휘둘렀다. 소란이 커지자 앳투와니 주민들(팔레스타인인)과 마온 정착민들(이스라엘인)은 더 몰려들었다.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구급차도 출동했지만, 하페즈는 이스라엘 구급차를 탔다. 그는 마온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구급자 타이어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병원에서의 치료가 끝나자 이스라엘 경찰은 하페즈의 다리에 수갑을 채워 조사실로 데려갔다. 그가 구금된 곳은 팔레스타인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라말라(Ram Allah)의 이스라엘 군 감옥(OFER)이었다. 그의 혐의는 농기구(삽)로 마온 정착민을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정착민쪽에서 삽을 든 하페즈의 사진을 재판에 제출했다. 하페즈 변호인은 영국의 국제인권 활동가가 촬영한 전체 영상본을 증거로 제출했다. 하페즈의 사건을 두고 팔레스타인쪽 미디어는 그를 피해자로, 반면 이스라엘쪽에서는 그를 가해자로 묘사했다.


하페즈는 열흘 동안의 구류 끝에 2022년 9월 23일 석방됐다. 그렇지만 무죄는 아니었다. 재판부로부터 혐의가 받아들여져 벌금형이 부과되었고, 그는 1만 셰켈(약 400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것이었다. 하페즈는 부상과 재판, 구금 기간 동안 경작을 하지 못해 2000셰켈(약 80만원)의 금전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게 “공격 했던 이들은 처벌과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by 코드블랙


파이어링존 918(Firing Zone 918)      


베들레헴에서 요르단강 서안 남부 헤브론까지는 차로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몇 개의 검문소를 지나고 골짜기와 돌산이 이어졌다. 목적지였던 앳투와니(At Tuwani) 마을은 마사퍼 야타(Masafer Yatta) 지역 내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이다. 올리브나 포도도 경작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주민들이 염소나  양을 키워 생활을 일군다. 앳투와니는 산악지역에 위치한 마을로, 하페즈 후레이니는 증축 공사가 진행 중인 자신의 집으로 우릴 데려갔다. 이층의 게스트하우스에는 호주와 이탈리아로부터 온 활동가 두 명이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들은 흥미로워했다.


하페즈의 집 앞에는 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나무 아래 모래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 위에 먼지가 쌓인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나무 테이블도 하나 있었는데, 다리 하나가 빠져버려 청년 하나가 못질을 하고 있었다.  


하페즈는 일행에게 자리를 권하더니 담뱃불을 붙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팀장의 통역으로 나는 앳투와니 마을에 있었던 일과 하페즈의 과거, 그리고 그 아들의 사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손주들은 나와 동행자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하페즈 후레이니는 남부 헤브론의 대중저항조직(South Hebron Popular Resistance)의 창립자로, 2000년부터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저항 운동을 해온 인물이다. 큰아들 사미 후레이니도 활동에 동참하면서 이들 부자는 이스라엘 정부나 인근 유대 정착촌 마온(Maon) 정착민에게 눈엣가시였다.  


by 코드블랙


1999년 11월 이스라엘군은 마스퍼 야타 지역에 대해 ‘파이어링존 918호(Firing Zone 918, 사격 구역)’를 공포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파이어링존에 속하는 마을 거주민 약 700명을 사격 구역에 불법 거주한 이들로 규정하고, 퇴거 명령을 내렸다. 파이어링존에 속하지 않은 마을을 포함하면 마스퍼 야타 내 15개 마을 1500명의 절반이 불법 거주자 신세가 된 것이었다.


당시에 대해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은 “이스라엘 당국의 퇴거 명령은 사격 구역에 대한 제한이 해당 지역의 기존 거주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기존 이스라엘 군사 명령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어쨌든 이스라엘 공포 이후 이들 700명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하페즈의 증언을 통해 나는 유엔 보고서나 현지 언론보도로는 알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파이어링존으로 지정된 지역 내 마을들에 이스라엘 군인들과 군장비, 트럭, 불도저 등이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거주민을 집밖으로 끌어낸 뒤 군용차량에 실어 도로 밖으로 데려갔다. 여러 마을에 있던 천막(거주 공간 및 창고, 휴게 시설 등으로 사용됨), 집, 동굴, 우물은 파괴되었다. 앳투와니를 비롯해 마스퍼 야타 지역 내 소규모 마을은 물과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오지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식수와 생활용수는 우물에서, 전기는 집집마다 소규모 태양광 패널로 얻는다. 파괴된 시설들은 모두 거주민들이 자력으로 가꾼 것들이었다.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이스라엘 당국의 조치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석 달 동안이 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조직화된 행동에 나섰다. 언론에 호소하는 등 캠페인이 진행되자 이스라엘 현지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이 사안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당국의 입장도 바뀌기 시작했다. 하페즈의 말이었다.


“몇 달 후 압력을 받은 이스라엘 고등법원(HCJ)은 사람들이 다시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임시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렇게 2022년 5월 이전까지 살고 있었는데, 고등법원의 임시 조치가 끝나서 퇴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2022년 5월 4일).”


OCHA에 따르면, 이스라엘 고등법원(HCJ)은 퇴거 명령이 부당하며 터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청원(일종의 퇴거 명령 가처분 성격)에 대해 최정 결정이 나올 때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에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퇴거 명령은 임시 중단된 상태였고, 최종 법원 판결이 팔레스타인 거주민에게 불리하게 나올 경우, 재산 파괴의 위협과 퇴거명령이 언제라도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by 코드블랙


하페즈는 이스라엘의 파이어링존 공포 및 거주민의 퇴거 명령이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차원에서 시행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린 라인(Green Line) 구역의 구획을 나누고 각 마을에 대해 구역을 지정, 공간을 나누고 2차선 순찰도로인 317번 도로를 깔아 지역을 찢어 놨다는 것이다. 하페즈는 “도로는 분리장벽처럼 마을을 분리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눠져 분리된 곳에는 이스라엘인이 거주하는 정착촌 건설됐는데, 정착촌은 확장되고 있고 아웃포스트도 들어서고 있다. 정착촌이 건설되지 않은 지역의 경우, 군사지역으로 지정해 팔레스타인 사람의 땅을 ‘땅따먹기’한다는 게 하페즈의 주장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기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린 라인(Green Line)은 이스라엘의 1967년 이전 국경으로 주변국과의 군사분계선이다.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까지 이스라엘의 비공식적 국경이었지만, 1967년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모두 점령한 이후 그린라인 바깥 영토를 점령지로 구분하고 있다.  


마스퍼 야파 내 파이어링존으로 지정된 마을 대부분은 양과 염소를 키우거나 농작물을 가꿔 생계를 잇는다. 전기·물·의료기관과 같은 사회 기반시설이 전무하다.


“물을 얻거나 가축을 키우려면 계속 이동을 해야 하는데 검문소를 만들어 이동을 못하게 하고 있죠.”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 2022 6 21 이스라엘군은 파이어링존에서의 군사훈련을 시작했고, 이후 훈련을 하지 않는 날에도 원거주민에 대한 이동 제한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파이어링존 안에 사는 주민들은 일부 지역에 갔다가 불법 침입 명목으로 체포되는 일이 잦다. 체포가 되면 조사, 구금, 구속까지 이어지고 석방되려면 보석금을 내야한다. 하페즈는 여러 정책이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 자발적으로 떠나게 만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by 코드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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