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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26. 2022

2022년에도 그들은 동굴에 산다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③

    

2022년 10월 7일 오후 2시경(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남부 헤브론에 위치한 마사퍼 야타(Masfer Yatta) 지역 내 앳투와니(At Tuwani) 마을에서 차를 타고 파이어링존(Firing Zone 918, 이스라엘군 사격 구역)으로 향했다.


사방이 돌로 된 구릉이 있었고 소규모 마을들은 구릉마다 모여있었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집 앞에 널어놓은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은 모래와 깨진 돌무더기를 달리다보니 늙은 말을 탄 소년 둘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개 한 마리가 이들을 뒤따르고 있었다. 나는 왜 하페즈가 앳투와니는 규모가 있는 마을이라고 했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하페즈가 도로 옆 석판을 가리켰다. 파이어링존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석이었다. 당초 푸른 색 페인트로 군사 구역임을 고지한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이를 주민들이 검정 페인트로 지워버리자 이스라엘군은 다시 붉은 페인트로 군사 구역임을 명시해 두었다.


by 코드블랙


차는 칼리에트 아싸바(khallet Athaba') 마을에 도착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15가구에 총 104명이 거주한다. 41개의 집과 시설이 있고 우물이 14개가 있었다. 학교도 한 곳 있었지만 보건소는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2022년 6월 16일 마을의 20개 시설에 대한 철거 명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기둥을 박고 철조망을 둘러 이스라엘의 철거 명령에 반대했다. 철조망은 비탈길에 30여미터만 세워져 있었는데 ‘마스퍼 야타를 구해주세요(#Save Masfer Yatta)’라고 쓰인 종이가 철조망마다 걸려있었다. 장대로 박아둔 팔레스타인 국기도 여러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천막도 한 개 있었는데 들어가보니 이불과 커피, 의자 등이 있었다. 천막에는 아랍식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원래의 무늬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색이 바래있었다. 마침 이곳에는 자벨 답하시(34)가 아들과 함께 있었다. 하페즈가 그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벨의 아들이 아랍식 커피를 건넸다.


자벨은 일곱 식구의 가장이었는데, 최근 집이 파괴돼 텐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따라 천막에 들어가보니 이불과 옷가지가 전부였다. 자벨의 거주지는 2018년부터 총 5번 철거됐다. 이전의 집터는 돌무더기만 남아있었다. 그는 우물을 열고 속을 보여주었다. 성인 머리보다 조금 큰 우물 입구는 평소 철로만든 뚜껑에 덮여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우물과 호스를 이어 생활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by 코드블랙


자벨의 여섯 번째 집은 바위를 파 만든 하얀색 동굴이었다. 흰 철제 문 아래 계단을 걸어내려 가니 빛이 들어오지 않은 서너평 가량의 동굴집이 나왔다. 방은 하나였는데 성인 남성이 허리를 필 수 없는 정도였고, 벽과 천장은 울퉁불퉁했다. 의자로 사용하는 곳은 아직 마감이 끝나지 않아 바위위에 앉아 있는 듯 했다.


자벨은 천장에 매달린 전기 램프를 밝히더니 창도 없는 동굴집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땅 위에 집을 지으니 자꾸 철거가 되어서 부술 수 없게 동굴을 팠다”고 말했다. 여섯 번째 집도 파괴되면 어떡하냐고 물어보자 자벨은 약간 화를 내더니 “이것은 내 집”이라고 했다. 남편이 손님을 맞는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옆의 동굴집에 있었다. 아이가 보채자 아내는 작은 소리로 아이를 달랬다.  


동굴 앞에는 세탁기와 건조대가 있었고, 나무도 몇 그루 세워져 있었다. 아직 집을 다 만든 것이 아니라 시멘트 포대와 모래가 바닥에 있었고, 옆에는 세탁기와 건조대가 있었다. 아이가 신었던 까만색 신발은 한짝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세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하얀색 운동화는 건조대 위에 놓여져 있었다. 자벨의 아버지는 내게 쓴 아랍식 커피를 건네 주었다.


by 코드블랙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2년 5월 11일과 6월 1일 키르벳 알 파키에트(Khirbet Al Fakhiet, 12가구 거주)와 미르케즈(Mirkez, 12가구 거주) 마을에서 집이 철거되었다. 일부 거주민의 경우 앞서 집이 철거된 경험이 있었고, 1년 미만 동안 자신들의 세 번째 집이 철거 조치되었다. 2022년 6월 7일에 키르벳 앳 타반(Khirbet at Tabban, 7가구 거주)의 모든 주택과 생계 시설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하페즈 후레이니는 마스퍼 야타 지역 안에 지정된 파이어링존에 포함된 마을들에 대해 이스라엘 당국이 매주 2회~3회 가량의 팔레스타인 거주지 철거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집이 철거된 이후 이스라엘 당국은 추가 증축 및 보수 허가를 불허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들에 대한 인근 이스라엘 정착촌의 위협도 증가하고 있다. 하페즈는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이 양이나 염소를 몰고 이동할 때 공격을 하고, 더러는 칼로 찌르기도 한다고 했다. 올리브 나무를 자르거나 불을 지르기도 한다. 하페즈는 독극물을 우물에 타는 일도 있다면서  그들의 횡포가 이스라엘 군대의 비호로 가능하다고 했다.


by 코드블랙


“그들은 얼굴을 가려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합니다. 온갖 폭력을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 받지 않아요.”


현재 키르베트 사루라(Khirbet Sarura)와 카루베(Kharoubeh) 마을은 거주지 및 시설이 파괴된 이후 거주민들이 모두 떠난 상태이다. 때문에 청년들은 떠난 이들의 복귀를 돕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스 오브 써무드(Youth of Sumud)는 집터를 지키고 떠난 사람들의 복귀를 돕는다는 취지로 2017년 결성됐다. 동굴집을 수리하며 열성적인 활동을 하던 하페즈의 큰 아들은 2018년 사루라 마을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사륜구동 오토바이가 다리를 뭉게고 지나가 허벅지 뼈가 완전히 부서졌다. 아들은 한달 가량 입원해 인공뼈를 이식받았다. 파이어링존의 비극은 아들의 발과 아버지의 팔에 큰 부상을 남긴 것이다.


수난이대(受難二代)의 비극에도 성과는 있었다. 떠났던 한 가구가 마사퍼 야타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하페즈는 올리브 수확철이 가까워오면서 근심이 커졌다. 이때 인근 유대정착촌의 공격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떠난지 며칠 후 나는 마사퍼 야타가 정착촌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by 갓산 나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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