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국경은 없다④
감염병은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감염병은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이다. 그래서 감염병이 창궐하면 대중은 패닉에 빠지기 쉽다. 때문에 창궐 국가의 보건당국은 정확한 사실을 밝히길 꺼린다. 그래서 정보의 축소는 감염병 사태 와중에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은폐는 폐쇄적 사회일수록 더욱 기승을 부린다.
갑작스런 바이러스의 공격
2019년 연말.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중국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소식이었다. 중국 후베이 성 우한 시의 화난 수산시장에서 폐렴 증상을 호소한 환자가 집단 발생한 것이다. 중국 후베이 성 우한 시 위생건강위원회는 2019년 12월 31일 기준 27명이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SNS를 통해 지난 2002년 중국과 전 세계를 강타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가 재창궐한 게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곧 그런 내용이 담긴 게시물들은 중국 정부에 의해 삭제됐다.
바이러스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우한 시 위생건강위원회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우한 시에서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이 질환을 일으킨 바이러스에 대해 분석 중”이라면서도 “폐렴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애매한 발표를 내놨다. WHO는 이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된 것으로 봤다. 중국 지역 언론은 화난 수산시장에서 토끼, 꿩, 뱀 등 야생동물이 판매됐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바이러스가 전염된 것과 비슷했다.
발칵 뒤집어 진 것은 인근 도시와 국가들이었다. 특히 우한 시에서 고속열차로 4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홍콩은 비상경보를 내리고 검역을 강화했다. 소피아 챈 홍콩 식품보건장관은 홍콩에서 감염병 경보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우한시의 상황은 비정상적(unusual)입니다. 우린 아직 신종 바이러스 창궐의 명확한 원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우한 시를 방문했던 홍콩인 3명이 폐렴 증상을 보였던 것이다. 다행히 2명은 증세 호전으로 퇴원했고, 1명도 더는 고열 증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홍콩 보건당국은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스의 기억
홍콩이 경계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과거 사스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다. 2002년 중국 광둥 성에서 발생한 사스는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됐다. 중국에서만 5300명이 감염돼 이 중 349명이 사망했고, 홍콩에서는 1750명이 감염, 299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 세계적으로 775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우리나라는 4명이 감염됐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불안이 커지자 홍콩의 미생물학자인 유엔 곽 융 홍콩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한 시의 경우가 홍콩독감, 사스와 비슷하지만, 대중이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도 2020년 1월 3일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대책반’을 구성하고, 1주일에 8편 직항 운행 중인 우한 시 발 항공편의 국내 입국자를 ‘게이트검역’을 통해 발열이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검역에서 걸러내지 못한 체류자에게 스스로 신고할 것을 권고했다.
감염병 대책의 핵심은 ‘정보 확보’와 ‘선제적 대처’다. 현재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이번 신종 바이러스와 감염병의 정체에 대한 정보 일체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향후 상황에 따라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것이 중국 정부가 얼마만큼 정보를 교류할지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보 의존 및 부족 현상은 ‘선제적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 실무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과 접촉을 하고 있지만 언론에 공개된 내용 외에는 알지 못해요.(중략) 중국 당국이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들의 말을 믿고 그 수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죠. (검역을 강화하려면) ‘검역 오염지역’으로 설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한 질병명 등은 있어야 해요. 지금은 주의 안내 당부 정도만 하고 있어요.”
바이러스 연구 및 현지 실사가 ‘무리’라는 건 그렇다 치자.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질문을 던지자,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선제적 대처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중국에서 27명 말고도 환자가 더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뭘 알아야 선제적 조치를 하죠..”
핫라인도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대처가 충분한 것이지, 불완전한 감염병 정보 확보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는 한중일 보건부 장관회의가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합의된 감염병 협조체계란 것이 정말로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당시에도, 지금도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수일 후 장관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염병에 대해 진전된 합의 내용이 있었나요?”
“감염병이 발생하면 실무자선에서 핫라인을 개통하고 장관끼리도 주고받을 핫라인도 열기로 했습니다.”
“중국에서 발생한 폐페스트 등 감염병 정보가 현지에서도 충분한 공유가 안됐던 것으로 압니다. 민감한 감염병의 경우에는 정보 교류 확대가 필요하지 않나요?”
“우리와 중국은 폐페스트 정보를 긴밀하고 신속하게 주고받아왔습니다. 환자 상태 및 중국 정부의 대처, 확산 방지 대책 등을 매일 주고받았죠. 이런 경험을 모아 내년에 한중간 워크숍을 열기로 했습니다. 위중한 감염병 발생 시 어떻게 행동하고 지방단위까지 어떻게 행동에 옮길지 도상훈련을 하는데 합의했고요. 내년에 대규모로 실시할 겁니다.”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우려도 여전했다. 보이지 않는 위협, 정체불명 바이러스의 공습에 과연 우리는 충분한 대비가 되어있는걸까. 문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