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1부 ②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마태오복음 2:18)
“아이들이 수영장을 보고 이게 바다냐고 했어요.” 팔레스타인 사람, 하캄이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지중해, 사해 등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의 아이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바다를 책 속에서만 본 적이 있다.
왜 그럴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동에 제약을 받는다. 가까운 인근 국가로 나가려고 해도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까다로운 절차와 허가가 불허되는 일이 잦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로 이동하기도 만만치 않다. 차로 달려 15분이면 갈 거리가 군이 지키는 ‘체크포인트’로 인해 지연되는 일이 팔레스타인에서는 부지기수다. 이 이야기는 봉쇄된(혹은 포위된) 땅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정오를 지난 강렬한 태양이 머리 위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해발 777미터 고도의 산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 1만611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땅에 2만5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산다. 베들레헴이 유명한 이유는 예수가 태어난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사에서 역사상 유래 없는 분리장벽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분리장벽의 총 길이는 750킬로미터가 넘는다. 길이만 놓고 보면 과거 요르단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을 때의 팔레스타인 영토보다 더 넓다.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 곳곳을 동강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도 망가뜨렸다. 현지에서 만난 ‘장벽반대 캠페인 네트워크’의 사라 하와자 위원의 말.
“2002년 분리장벽 설치가 법령으로 보장됐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영토 몰수 및 새 정착촌 구축을 목적으로 분리장벽을 설치했어요. 서안지구 전체에 설치된 분리장벽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7개의 분할봉쇄 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었죠.”
“당장 집에서 나가라. 로켓(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네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다.” 이 섬뜩한 경고는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거주민에게 가한 위협이다. 군은 글과 전화로 위의 짧은 경고 문구를 거주민에게 통보했다. 위협은 거짓말이거나 실제 참상으로 이어졌다. 이슈를 몰고다니는 아티스트 뱅크시가 지난 2017년 베들레헴에 문을 연 월드오프호텔(The Walled-off Hotel). 이팔갈등을 참상을 예술로 드러낸 이 호텔 내부에는 박물관이 있다. 조형물로 설치된 전화 부스에서 나는 위의 사연을 처음 접했다.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려고 과장을 한 것이 아니겠냐고 여겼던 것이 아이다 난민캠프에 이르러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실제로 이러한 위협이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베들레헴내 아이다 난민캠프의 입구 상단에는 열쇠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열쇠는 삶의 터전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진 장벽 때문에 수중에 집 열쇠 하나만 지니고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의 애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열쇠를 그린 벽화와 포스터, 그림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열쇠는 자유와 주거의 권리를 박탈당한 그들의 저항 운동을 나타내는 오브제였다.
난민캠프에는 6000여명이 산다. 캠프내 ‘아이다 유스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이드가 내게 캠프 곳곳을 설명해 주었다. 난민들은 이곳에 터전을 일궜다. 벽돌을 쌓고 건물을 올렸다. 캠프 안에는 상점과 카페도 있다. 더위에 지친 나는 캠프안의 카페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맛보았다. 묵직한 아라비카노의 향에는 쓸쓸함이 섞여 있었다.
빼앗긴 터전을 뒤로하고 자리를 잡은 난민캠프라고 하지만, 강탈당한 자유의 희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 흔적은, 벽화와 낙서 등의 형태로 캠프 곳곳에 남아있었다. 벽에 쓰인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린 돌아갈 것이다.”
사이드가 속한 아이다 유스센터는 음악과 체육에 소질이 있는 난민 청소년을 발굴, 해외에 알리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곳은 해외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후원이 끊기고 있다고 했다. 사이드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어 그 안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고난이도의 기계체조를 하는 그의 모습. 체조선수가 되고 싶던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이란 벽 앞에 좌절했다.
그는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친다. 공부를 계속해 영어 교사도 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도 싶다. 이십대 초반. 꿈 많은 청춘의 자유로운 영혼은, 그러나 이곳 봉쇄된 캠프에 붙들려 있었다.
난민캠프의 사방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센터에서 직선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이스라엘 군 시설이 있었다. 이곳은 포위된 전장과 다를바 없다. 곳곳에서 깨어진 유리창과 최루탄의 탄피가 즐비했다. 캠프의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총격으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사이드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스라엘 군의 일상적 공격(Daily attack)이 가장 큰 위협이죠. 그 소년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군은 아무 이유도 없이 소년을 쏘았어요.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 군인이 처벌도 받지 않았죠.”
사이드도 죽음의 위협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12살 소년이었던 사이드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의 위협을 받았다. 일행은 건물로 도망쳤고, 군인들은 건물 입구를 막았다. 밖에서는 이들을 위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사이드는 가까스로 지하통로로 탈출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그에게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환자들은 어디에서 치료를 받나요?”
“가까운 병원으로 가요.”
“캠프에 의료진은 없나요?”
“.....”
나는 팔레스타인 인권활동가인 자말에게 이스라엘 정부의 ‘플랜’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지난 1992년부터 이스라엘은 오는 2025년까지의 청사진을 그리는 연구를 시작했다. 1997년 보고서 초안 중 예루살렘 관련 분량은 900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는 갈릴리개발계획(Galilee Development plan), 네게브 개발계획(Negev Development) 등이 포함돼 있다.
내가 방문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관련해 눈여겨 볼 부분은, 2025년까지 ‘서안지구의 유대화’ 추진 계획이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 내 설치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주요 거점 역할을 맡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정착촌에 반감과 우려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2020년 7월 1일부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30%에 달하는 영토 병합을 공식화했다.
탄위르의 상임 활동가 와엘은 “이스라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 우리의 삶을 병합해왔다”고 비판했다. 칼리드 알리 나세프 라말라인권연구회 사무총장도 “외부에서는 가자지구와 비교해 서안지구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사이드와 헤어질 무렵 검은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바람을 타고 시야를 흐렸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는데, 장벽 앞 임시 쓰레기장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앞을 열 살 남짓한 소녀 둘이 걷고 있었다. 아이들은 풍선을 쥐고 있었다. 아차, 누군가 놓친 풍선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나 장벽에 부딪쳐 쓰레기 더미로 추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