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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22. 2020

‘또’ 한달이나 브런치에 글을 못쓴 이유


지난 한 달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 새 글을 선보이지 못했습니다. 브런치는 제게 가장 소중한 공간입니다. 글을 쓰지 못한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인권 문제에 매달려왔다. 보건복지, 분쟁지역에서의 취재 등은 모두 인권이란 화두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계기는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의 인권 의식에 의문을 갖고 있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민주국가, 세계 경제 규모 10위,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선진적인 감염병 통제력, 비교 대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빼어난 건강보험제도, 그리고 BTS까지. 그러나 유럽의 기자가 내게 툭 던지듯 건넨 말은 이런 자랑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더 화가 나는 건 그의 말을 일정 부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 ‘빡침’은 날 인권 문제에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최근 회사의 신생 부서의 장을 맡으면서 첫 프로젝트 역시 인권에 대한 것이었으니 할 말은 다했을 터다.  


<벽: 너와 나를 나누는> 3부작 각각의 포스터


나와 제작진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다룬 웹시리즈 <벽: 너와 나를 나누는>을 위해 지난 두 달 동안 몹시 분주했다. 제작진은 코로나19 유행의 위협이 감돌던 시기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에 골몰했다. 성소수자, 정신장애인, 이주노동자…. 우리사회에 비단 소수자가 이들 뿐이겠냐마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소수자의 권익을 말할 수 없었다. 이밖에도 국가인권위원회, 국회의원, 정신과 전문의, 변호사, 국제 NGO 활동가 등 여러 취재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팀에 합류한 영상 피디는 팔에 깁스를 한 상태로 제작 과정이 뛰어들었다. 피디에게 소회를 묻자 다음과 같은 글이 날아왔다.


“왼팔에 깁스를 한 채 팀에 합류했다. 팀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카메라를 드는 것조차 버거웠다. 깁스를 불편함을 참지 못해 가끔 벗어던지기도 했는데, 취재 과정에서 갑갑한 힘듦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무거운 이야기를 영상에 잘 담아낼지 고심했다.

열악한 촬영장비로 촬영을 하거나 한 손으로 편집하는 것, 영상을 돋보일 음악을 고르기 위해수백곡을 듣고, 자료 영상을 위해 발품을 팔았다. 지난한 후반 작업과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욕심 대신 꼭 전해야 할 메시지를 위한 버림의 작업. 그리고 촬영 실수와 편집 오류가 발견될 때의 안타까움…. 그럼에도 아쉬움을 털고 다음 작업으로의 집중을 반복했다. 바라는 것은 하나, 우리의 영상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법과 정치권을 향한 작은 울림이 전해지길.”


사진=VICE 유튜브 갈무리

새 팀을 조직하며 해외 여러 언론의 디지털 전략을 살폈다. ‘전교 1등’ 뉴욕타임스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미디어는 바이스(VICE)였다. ‘주류 문화의 전복을 꿈꾸는 반항아들의 미디어 실험실’. 기계적 중립이나 권위, 훈계일 랑 주류 언론에서 보고, 너희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보라는 자신감. 양복 대신 청바지,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의 저널리스트 대신 문신을 하고 이렇다 할 저널리즘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언더독을 전면에 내세운 그들의 전략은 적중했다. 가장 예민한 주제의 한복판에 뛰어든 야심만만한 다큐멘터리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젊은 층의 열광을 끌어냈다.  


바이스의 DNA를 팀에 이식하고 싶었다. 언론 경력은 전무하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한 제작진을 구성, 의사결정과 제작 전면에 투입했다. 그러자 참신한 아이디어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최종 결정은 나의 권한보다 가장 좋은 ‘선택’이 우선시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발제한 아이템은 계속 ‘까이고’ 있다. 데이터 피디의 말이다.


“다큐 영상에 쓰일 자료화면을 위해 여러 곳을 발품을 팔고, 어떻게 촬영해야 더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다큐와 기사의 여러 인터뷰가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꼈다. 취재원의 섭외는 만만치 않았다. 그들이 인터뷰를 고사한 이유는 다양했지만, 자칫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거절 의사를 밝힌 이들도 있었다. 차별로 인한 실제 위협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선 인터뷰이들의 용기에 진심으로 감사를 보낸다.”


다큐 제작 과정에 있어 주안을 둔 점 가운데 하나는 메시지를 관통하는 시각화였다. 어떠한 기술과 색상을 사용하느냐는 결국 메시지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달렸다고 봤다. 시각화가 디자인적 미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관점 하에 내린 결론은 ‘디테일’에 있었다. 그런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해가 빠른 시각화 전문가가 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트 디렉터의 설명이다.   


“인터뷰이에 집중토록 만들고자 가급적 그래픽 요소는 덜어냈다. 대신 썸네일, 네임텍, 상단부 제목 등 각 영상 요소의 구획에서 특정 색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디테일을 잡았다. 색은 디자인적 적합성보다는 인터뷰이와의 소통 과정에서 착안한 색상을 선택했다. 3편 중반부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등 색의 블록이 모여 ‘벽’이라는 글자로 만든 것은, 각기 상황은 다르지만 차별이라는 동일한 벽에 부딪친 이들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시각적 장치였다.”


웹시리즈 <벽: 너와 나를 나누는>에서는 영상과 더불어 별도의 웹툰을 제작했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애니메이션이 활용될 예정이다. 우리가 만들어 낸 제작물은 유튜브 채널에 실린다. 채널 카테고리를 ‘뉴스’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로 설정해둔 이유는, 뉴스는 곧 콘텐츠여야 하고, 묵직하고 예민한 사안도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우리 삶에 묵직한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배어들 때라야 진짜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제작 과정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팀원 모두 한 마음으로 좋은 스토리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열정 때문이었다. 정작 날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조직의 불편한 시각들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언론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은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매출 하락으로 문 닫는 언론이 나오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우리 팀의 저널리즘 실험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으로 비쳐질 수 있을 테니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실험이 요구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이유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타개조차 관행의 되풀이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궁극적으로 반항적 실험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실험은 대외적 이유보다 내부적 반발에 직면에 좌초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실험은 계속될 수 있을까?


수년 후 ‘영리한’ 성공사례로 회자될 수 있을까? 앞날은 알지 못한다. 다만 의미 있는 메시지로 끊임없이 세상에 문을 두드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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