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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Dec 15. 2020

나의 찬란한 개망[소,우주]

소소한데 우주적인 에세이


과거 미디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적이 있다. 아이디어가 샘솟아 침대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메모하기도 부지기수. 자신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익힌 여러 노하우가 ‘ 회사 자양분이 되리라 기대했다. ‘성공이란 열매가 금방  손안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들뜬 마음으로 강남대로변에 값비싼 오피스를 구한 후 며칠을 공들여 만든 기획서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가는 곳 마다 퇴짜 맞기 일쑤. 듣도 보도 못한 1인 미디어기업에 지원이나 협업은커녕 문전박대가 일상이었다.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를 악물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초기 창업비용은 금방 바닥이 났다. 서울 변두리의 저렴한(허름한) 사무실로 옮기면서 이 데스밸리만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더욱 일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수개월 후 나는 세무서에 앉아 있었다. 폐업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다. 인생의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있는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이력서를 쓰는 기분이란!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창업은 초라하게 끝났다. 죽을 때까지 창업은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면서.


이후 나는 김밥과 라면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스타트업 기업이나 종사 노동자들에 대한 동병상련 혹은 연민의 감정은 아직 갖고 있다.


한때 유행처럼 퇴사 붐이 인 적이 있었다. 또 최근 스타트업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잃어버린 열정과 도전이 주는 판타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은 결코 드라마가 아니고, 지극히 냉혹한 적자생존의 현실이라는 점, 스타트업은 약육강식의 가장 아랫부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는 판타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그런 판타지를 직접 경험해보는 게 한번쯤은 괜찮을 것 같다. 당시 밤을 새우고 쓴 글들은 훗날 여러 기획 보도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다양한 기획서를 만들었던 경험은 외부와의 협업과 팀을 운영하는데 큰 자양분이 됐다.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더이상 실패를 해도 실망은 하지 않는다.


가끔 사람에 치이고 삶이 힘들어지면 마지막까지 내가 머물렀던 그 허름한 5층 사무실을 들르곤 한다. 불켜진 그곳에서 누군가는 과거의 나처럼 인생을 건 도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때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추억하며 불켜진 창문을 쳐다보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추억하는 것이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끝나고 말까. 회사를 관두고 당장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는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내자.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냉혹함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 마지막 판타지에 뛰어들 다이빙 점프대 위에 오를 때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찬란한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옴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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