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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Oct 21. 2024

음악인이 체육인이 되다.

 지독히도 가난했다.

마음도 가난했고, 형편도 가난했고, 상황도 가난했다.

진해로 내려온 다음 날, 태권도장에서는 못 살겠다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결혼을 생각하며 왔지만, 결혼은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하루 김밥 한 줄로 둘이 아점을 때우기 일쑤, 회비가 들어와서 갚아야 할 돈을 제하고도 돈이 남으면 김밥천국으로 가 쫄면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너무 속상한 일이 생긴 날이면 소주 한 병과 멍게 한 접시를 사 진해루 둑에 앉아 한잔씩 걸치기도 했다. 그런 날은 마음은 힘들어도 그렇게 한잔, 두 잔 내가 좋아하는 멍 게와 바닷소리와 냄새로 풀 수 있음에 기분은 좋았다.


 신용카드 한 장 써 본 적 없는 우리는 22명의 아이 권리금 포 함 9,800만 원의 현금이 필요했다. 남편의 모은 돈 3,000만 원과 누님에게 빌린 2,000만 원, 엄마에게 빌린 2,000만 원으로 충당하 고 남은 200만 원과 어찌저찌 남아있던 100만 원 남짓의 돈으로 보증금 300만 원에 월 25만 원 원룸을 구했다.


 방과 주방과 화장실이 한데 있었고 문 앞을 나가면 주차장이었지만 적어도 바퀴벌레와는 자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만하면 다행이었다. 다만 원룸 주차장이 현관 앞이니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들이 주차장 앞의 건물에 나 있는 창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렸던 것만 빼면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결혼을 생각하며 나의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을 때 결혼 상대가 아니니 헤어지라고 조언했다는 남편의 스승님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3,000만 원의 나머지 필요한 돈을 동업이라는 이름으로 스승님에 게 빌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계약하러 간 날, 집으로 돌아와서 며칠을 울었다.


 처음 6개월간은 도장 수입료의 절반을, 그 이후로는 달에 250만 원씩 2년 반 동안 수익 배분을 한다는 조건과 그 계약 기간 동안 도장이 안정적으로 잘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내가 도장에서 남편을 도와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1억 원의 배상을 하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한 번도 빚이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그렇게     ‘우리’라는 명목으로 단 며칠 만에 1억여 원이라는 큰 빚과 나의 책임 여부에 따른 1억 원 도합 2억 원이라는 불안을 지었다.


 신경정신과를 가봐야겠다고 입에 버릇처럼 달고 다닌 지 2년여 정도가 지나고 여자아이들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매 만져줄 때 그때 서야 조금은 나아진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2년 반의 계약 기간 동안 양가의 도움 없이 결혼식을 하 고 가족들과 스승님에게 진 모든 빚을 청산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삶에서 언제든 일어난다.

20대에 들어서며 내가 노력만 한다면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고 성인이 되었으니, 부모의 환경이 아니라 나의 힘으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연히 한 사람의 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시간 싸움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인정하면서 삶의 정해진 시간은 누구도 자신할 수 없으니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 없이 안녕을 고하는데 쿨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나의 의지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감을 자신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도 온다는 걸 성인이 된 내가 그럴 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파괴적으로 나 자신을 버리고 싶었다. 참아 온 모든 것을 토해내듯 그런 것들로부터 울음을 참지 않았다. 힘을 내기도 벅찼고 주저앉고 싶었다.


 그 때 내 옆에 한 사람만은 나와 무엇이든 함께했다. 그렇게 아플 때 같이 아파했고 슬플 때 같이 울었다. 힘내고 싶지 않을 때는 나를 응원했다. 그렇게 그런 마음이 당연하다고 인정해 주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내 옆의 나를 인정해 주고 힘들 때 힘들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으로 인해 내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고 가끔 미친 짓을 하기도 하지만 그 미친 짓도 그럴 수 있다는 말 한마디로 미안함을 지워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을 때, 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힘들 때 힘들 수 있다, 아플 때 아플 수 있다, 주저앉고 싶을 때 그럴 수 있다 말해주며

눈물 떨어진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다면.


 당신은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와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순간조차도 내 옆의 사람을 잘 알아보기 위한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끼게 될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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