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몰래 1박 2일 여행, 호주 NSW 뉴캐슬 Newcastle
1박 2일 여행
호주 NSW 뉴캐슬 Newcaslte
결혼 17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 몰래 혼자 여행을.
미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지 그 여행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자기 때문에 못했어.
결혼 후 남편과 살면서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간혹 일어났지만 시도해 보지 못했다. 남편이 원하지 않으니까. 항상 같이 있기를 원하고 아내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과연 이것이 맞을까?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 책을 읽고 문득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최근 남편과 대화 중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기 핑계를 대지 말라고 그것은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태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앗, 그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세 번째로 시드니 정부가 교통비를 무료로 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게다가 50불 숙박 쿠폰을 제공해 주면서 여행을 장려하고 있다.
그래, 결심했어!
모든 상황이 지금 혼자 여행을 떠나라고 응원가를 불러주고 있다.
남편이 혼자 여행 못 가게 말리는 것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번 여행은 첫 시도이니 만큼 아주 자연스럽게 떠나야만 남편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평소와 똑같이 행동을 하고 남편 출근 배웅을 한 후에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짐을 챙겨서 1시간 만에 집을 나섰다. 물론 숙박은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남편 몰래 여행 가는 그 목적지는 바로 뉴캐슬 Newcastle, 시드니 시티에서 기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기차로 대략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NSW 뉴캐슬로 드디어 여행을 떠난다.
떠나기 전에 몇 번이나 망설이고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막상 남편 출근 후에 혼자서 가방을 챙길 때부터는 뭔가 설렘이 더 앞서기 시작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평소와 똑같이 생활을 하고, 수다스러운 입을 굳게 다물며, 속으로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일찍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9시간 푹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출근하는 남편을 잘 배웅하고 바로 샤워하고 간단한 짐을 챙겨 배낭 하나를 메고 길을 나섰다.
드디어 도착한 뉴캐슬 비치.
가을이지만 낮에는 더운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 연휴 기간이라 비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영을 하는 사람, 파도를 타는 서퍼들, 멍을 때리는 사람들, 선탠을 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뉴캐슬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동네 펍에 들어갔다.
맛있게 음식을 음미하면서 뉴캐슬에서 혼자만에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이때 따르릉 핸드폰 전화벨이 울린다.
앗, 여행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남편이다.
"어디야?"
그의 첫마디 질문이 이상하다. 그는 퇴근하자마자 아내가 보이지 않으니 바로 전화를 한 것이다. 아직 그는 내가 써 놓은 카드를 읽지 않았다.
식탁에 놓고 간 카드를 먼저 읽으라고 알려줬다.
전화기 너머로 남편에 목소리에서 정적이 흐른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말을 더듬으면서 일단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전화를 걸으라고 한다.
남편이 최근에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요새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과 회사일을 돌아보며 사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일이 안 생기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 현실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속상해봐야 그건 내 손해라고.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남편은 나의 1박 2일 여행 반란도 그 연장선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런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불안했던 마음은 싹 사라져 없어지고 오히려 남편이 쿨하게 인정해 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는 카톡으로 혼자 먹는 저녁 비빔밥 인증샷을 보내준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여독을 풀기 위해서 벽난로 앞에서 쉬고 있다.
이곳에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남편과 통화를 한다. 전화기 너머 남편에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니 연애하던 옛 시절이 생각난다. 그의 목소리는 남편이 아니라 남자 친구 같다.
그는 어젯밤에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고 한다.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고. 그래서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려나 아니면 주식이 폭락하려나 걱정을 했는데 아내가 집을 몰래 나간 것이었다니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마음이 좀 나아졌다고 한다.
내가 몰래 여행 간 것에 대해서 별말 없이 안전하게 잘 놀다가 오라고 당부를 하고 자기는 코미디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
남편 몰래 여행을 떠났는데 걱정했던 일이 막상 현실에서 펼쳐지니 오히려 상상하면서 두려워했던 마음보다는 가볍게 다가와서 그런가 생각보다 그의 반응이 잔잔한 파도 같다.
뉴캐슬에 밤을 느끼면서 방으로 가서 혼자 누워본다.
평소보다 많이 걷다 보니 피곤해서 잠이 쉬이 들지 않는다. 익숙한 공간이 아닌 낯선 곳에 약간은 열악한 잠자리에서 잠을 자려니 집에서처럼 꿀잠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책도 보다가 어느 순간 밤 10시가 한참 넘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남편 없는 뉴캐슬에 아침이 밝았다.
새벽 5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보통 아침 8시까지 자는 잠순이 인데 역시 낯선 곳에 오니 몸이 알아서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래서 생각은 바로 일어나서 새벽 산책을 나가고 싶은데 영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고 몸이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영부영 7시 반을 넘기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나 호스텔 앞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아침에 습한 바람이 부는 데 수영을 하는 사람, 달리기를 하는 사람, 걷기를 하는 사람, 심지어 서핑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곳에서 1박을 하지 않았다면 맞이할 수 없는 아침 바다를 바라보면서 춥다고 옷깃을 당긴다.
커피가 나왔다. 타일이 깔린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모닝 바다 커피 한잔 운치를 뽐내본다.
모닝 산책을 마치고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정리를 하자.
숙소에서 개와 같이 정말 재미나게 놀고 있는 소년이다. 그런데 이 개가 정말 신기하게도 막 바닥에 벌렁벌렁 헤벌레 누우면서 장난을 치고 있다. 딱 봐도 순하게 보인다.
원래 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웬만하면 개 근처에 가지 않는데 이 개는 뭔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년에게 이 개가 몇 살이냐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자기 개가 아니라고 이 호스텔에 일하는 사람이 기르는 개인 것 같다.
개 털이 참 양처럼 생겨서 너무 폭신폭신해 보인다. 그래서 옆으로 가서 손으로 만져보니 정말 부들부들 폭신폭신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도 만져주고 등도 만져주었다. 그런데 이 개는 내 손길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준다. 그게 더 신기했다.
참 어처구니없게 개를 무서워하는 성향이라서 개와 이렇게 교감을 나눈 건 살면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개는 여태 수많은 그런 개와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왈왈 웍웍 이런 개소리를 한 번도 내지 않고 낯선 사람에 손길을 느껴도 몸에 두려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것은 이 귀염둥이 순둥이 개가 떠오른다.
이 개를 다시 만나고 개털을 쓰다듬고 싶어서 이곳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평소에 개를 무서워하는 나를 사로잡은 특별한 강아지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정이 듬뿍 간다.
문득 남편과 인연에 대한 생각이 스쳐간다.
어찌 보면 차가운 성정에 무정한 나에게 정으로 다가오는 특별한 존재, 숙소에서 만난 이 양털 개와 같은 사람과는 인연이 될 수 있는 거 같다. 평범한 개와는 그다지 교감을 하지 못하지만 이런 특별한 개와는 정으로 교류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삶에서
이런 개 같은 인연이
바로 남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 같은 남편과 인연은 특별했다. 무정한 나에게, 사랑을 모르던 나에게, 정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지금 쓰담쓰담 하고 있는 이 양털 개처럼.
연애 초기에 '와바'라는 병맥주 집에서 남편과 데이트를 하는데 맥주 두 병 마시고 하는 말이 '자기는 어떤 여자와 살아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별로였다. 아무 여자 하고나 살 수 있다니. 나를 아무 여자랑 비교를 하다니.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여자와도 무난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순한 사람이기에 성깔 드러운 너 같은 여자, 너와 잘 살 수 있다. 이런 표현을 애 둘러서 한 것이었다.
즉, 아주 순한 개는 개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개라는 존재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남편이 나에게 남자라는 존재가 그렇게 두려운 존재, 불편한 존재,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좋은 사람 따스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정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두터운 두려움에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이 개처럼.
남편에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서 1박 2일 몰래 여행을 떠났는데 오히려 남편에 애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어젯밤에 남편과 통화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남자 친구 시절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연애를 한다고 해도 이 개 같은 사람을 만날 거 같은 느낌이다.
개 같은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 되어 어제 아내 없이 혼자서 잠을 잤던 것이다.
역시 1박 2일 여행은 너무 짧다. 제대로 뉴캐슬을 즐기려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이곳에서 꼭 경험해할 것에 20%만 즐기고 가는 것이 아쉽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포근하고 평안하다.
집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고, 밖으로 떠나보니 집이 참 좋다. 오락가락하는 마음 그게 어제오늘 심정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3편으로 나누어 올린 글을 하나로 요약해보았습니다. 상세 버전에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blog.naver.com/weisoon/222705245090
https://blog.naver.com/weisoon/222706055241
https://blog.naver.com/weisoon/222706854503
https://blog.naver.com/weisoon/222707945744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