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인생은 바둑이 아닌 오목?
오목소녀(2018)
드라마, 한국, 2018.05.24 개봉
57분, 전체관람가
감독 백승화
주연 박세완, 안우연
네티즌 평점: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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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삼아 오목을 둔 적이 있다. 그런데 오목도 대회가 있을 줄이야. 오목에도 고수들이 숨어있다.
바둑같이 유명하지 않지만 오목을 두는 곳에도 인생에 희로애락은 있다.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한때는 바둑 신동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주인공이 오목 대회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상영시간도 짧아 부담 없고, 어느 연령층이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무공해 웃음을 건질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이 글은 줄거리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때 바둑왕을 꿈꾸었던 바둑 신동 이바둑(박세완)은 청소년 시기에 바둑을 그만두었다. 계속 이기는 바둑만 하면서 승승장구했는데, 어느 순간 센 상대를 만났다.
바둑판 어디라도 한 점을 두면 질 것이라는 예감이 온다. 그녀는 결국 시간 내에 바둑알을 놓지 못하게 된다. 그 후로 바둑을 관두었다.
성인이 된 그녀는 기원에서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친구와 같이 자취방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 친구는 음악을 하는데 역시 잘 풀리는 청춘이 아니었다.
어디라도 기대 보고 싶었던 친구에게 접근한 '도를 아십니까?' 때문에, 이제 월세 낼 돈이 없다. 이바둑도 이미 보증금을 까먹은 지 오래다.
기원에 오목 천재 김안경(안우연)이 나타나서 우리 동네 오목 대회 홍보 전단지를 붙인다. 일등 상금이 오십만 원이다.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순전히 상금을 노리고 출전한다.
하지만 예선전에서 바로 탈락이다. 전직 바둑 신동이라 오목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보기 좋게 체면을 구겼다. 우리 동네 대회에서 김안경이 우승을 차지한다.
시무룩한 이바둑에게 김안경은 오목 천하제일 전국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김안경은 그녀와 한번 붙고 싶다면서 오목 트레이너 쌍삼을 소개해 준다. 그녀도 이번엔 기필코 우승을 하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우승 상금은 3백만 원이다.
오목 트레이너 쌍삼은 이바둑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여러 가지 훈련 과정을 제시한다. 차근차근 습득하는 그녀이다. 쌍삼은 대회가 막바지가 다가오자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잘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는 것도 중요해.
오목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야.
원래 다 그래.
드디어 결전에 날이 다가왔다. 이바둑 인생에 가장 열의가 가득 찬 날이다. 그녀는 기필코 김안경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리라 다짐한다.
가볍게 예선전을 통과하고 8강전에서 김안경과 한판 붙게 된다. 그에게는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것이 웃음 포인트이다.
오목 경기 중에 이바둑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다. 예전처럼 두려움으로 손이 오목판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인가? 이 순간이 정말 길게 느껴진다.
이때 이바둑은 이기든 지든 그냥 하자면서 오목 알을 황당한 자리에 놓는다. 김안경은 실책이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곧 기세는 이바둑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8강에 감격적인 승리를 맛본다.
이제 4강전이다. 2번만 더 이기면 우승 상금 삼백만 원을 가져갈 수 있다. 희망에 부풀어있다. 응원 온 친구와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라 웃고 있다.
하지만 바로 4강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바둑은 전국 대회에서 자신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오목을 이기든 지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기원에서 이바둑은 김안경과 재미로 오목을 두는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한때는 바둑으로 세상을 제패하려는 꿈을 안고 살아갔지만 현실은 그냥 기원에 알바를 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처음에 그녀에게 오목은 하찮은 세상으로 보였다.
그런 그녀가 오목 시합에 뛰어들면서 오목이라는 세상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안에서도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짱짱한 고수들을 이겨야 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원대한 꿈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에 큰 장벽에 부딪쳐서 그녀는 자신에 열정과 꿈을 버렸다.
하지만 오목 대회에 참여해 재능을 다시 확인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이제는 지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의대를 가고 의사를 하면서 항상 승승장구만 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고 그 순간 무너져버렸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가버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그 의사는 실패를 극복하거나 받아들이는 그런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시련에 항체가 없었던 상태에서 갑자기 찾아온 바이러스에 무너졌나 보다.
젊은 시절 이런저런 실패를 해본 사람은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와도 두려움 없이 대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경우 좌절을 한번 맛보면 그것을 극복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영화 속 오목 게임을 통해서 극복을 했듯이, 상대적으로 작은 곳에서 다시 시작해보면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골 동네에서 1등 한 친구들이 오히려 도시에 가서도 1등을 유지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상위권에 있는 친구들은 시골 동네 비슷한 실력 친구들에 비해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거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더 낫다
용미사두(龍尾蛇頭) 고사성어가 있다. 비슷한 실력이라도 내 동네에서 일등을 하는 느낌과 경쟁이 치열한 도시에서 상위권을 하는 것과는 자신감에서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 틈에 있어야 공부가 잘되는 친구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경쟁이 심한 데서 공부한 사람들은 빨리 지치고 열정이 사라진다.
바둑왕이라는 큰 꿈도 좋지만 오목왕이라는 꿈도 좋다는 것이다.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작아도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은 더 불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내가 사는 동네에 맛집을 가서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SNS를 보고 전국에서 제일 맛난 집을 찾아가야 한다. 심지어 해외 맛집까지 가야 할 판이다.
경쟁상대가 예전에는 동네라면 이젠 전국,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소박하게 동네 사람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과 전국에 사는 사람들 입맛에 맞춘 음식들과 경쟁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예전에 쇼핑은 마트에 가서 진열된 몇 개에 물건 중에서 고르면 되지만, 이젠 온라인에서 검색되는 수많은 물건들 중에서 골라야 한다. 비교할 것이 너무 많다. 머리가 아프다. 과연 이게 쇼핑에 질이 높아진 것인가?
그러다 보니 요새는 SNS 가짜 뉴스나 거짓 홍보에 속아서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긴다. 과연 동네 슈퍼에서 아는 사람들끼리 물건을 파는데 그런 나쁜 짓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이 확장될수록 사람들에게 피로감이 쌓여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인간관계도 나이가 들면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야 소통이 더 원활하다.
이제는 글로벌이 아닌 소규모로 작은 커뮤니티, 작은 동네, 지방 소도시 이런 것을 활성화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앞으로 이사 가고 싶은 곳은 대도시가 아닌 바로 지방 소도시 주변이다. 그곳은 과도한 경쟁과 글로벌 시장에 지쳐버린 영혼을 추수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바둑이 아닌 오목처럼 말이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