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문
특별히 갈 곳도 없고 갈 돈도 없었던 청소년 시절, 방학은 길고 지루했다.
초등학교 땐 밤마다 전래동화 이야기를 카세트 테이프로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중학생이 되면서 다행히 라디오가 하루 종일 이야기 친구가 되어 주었다. 끄적끄적, 가끔 좋아하는 팝송이 나오면 틀리는 가사지만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어 그대로 따라 부르곤 했다. 신해철의 '재즈카페'의 랩 가사를 적을 땐 마치 시험공부를 하는 아이처럼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구간반복을 하며 듣고 받아 적었다.
4살 어린 동생이 만화책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함께 만화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베르사이유 장미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 시작한 슬램덩크는 신세계였다. 당장이라도 문을 나서면 동네 어디선가 강백호가 농구를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동생이 동네 만화방에서 10권씩 빌려와서 먼저 읽고 내 책상에 올려두면 더 늦게 집에 오는 내가 이어 읽었다. 가끔 내 속도가 빨라지면 동생 옆에 붙어서 얼른 읽고 달라고 조르기도 하다가 그냥 같이 읽기도 했다.
이면지가 있으면 나는 글을, 동생은 그림을 끄적였다. 고3 때 언니 수능 잘 보라고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려줬었는데 그 그림을 잘 챙겨둘 걸 후회가 된다. <스즈메의 문단속>처럼 차원의 문이 열려 준다면 잠시 그 시절로 다녀오고 싶다.
요즘은 예고에 다니는 딸아이가 왠지 동생처럼 나에게 위안이 된다. 그림 속 작은 새처럼 나와 같은 창문을 바라보며 미래를 이야기한다. 끄적끄적 여전히 함께 무언가를 끄적이며.
작품 <온기로 만난 우리> 안소현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