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오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물초점이 맞춰진 고양이의 눈에 배경은 모두 자동 블러 처리되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불안하게 난간에 서 있는 아이. 하지만 고양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믿고 기다리며 각자의 영역을 지켜준다.
오늘 새벽, 예고에 다니는 딸이 학교에서 문화탐방 차 미국으로 떠났다.
밤 9시에 집에 오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12시가 넘을 때까지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아이. 인형놀이를 하자고 집에 있는 인형을 작은 손에 이고 지고 들고 오던 아이는 나보다 10센티나 커서 꽤 큰 캐리어를 드는 일에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 시차 적응을 위해 밤을 새운 아이는 여행 준비를 마치고 헤어스타일을 다듬고 있었다.
아파트 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공항리무진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 아이를 눈으로, 카메라로 찍는다. 인물초점 기능을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므로 조금 떨어져 바라본다.
뿌예지는 배경. 아이만 또렷하게 그려진다.
태어나고 자란 안양이 제일 좋아서 서울도 싫다던 아이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한강에 놀러 가고 대학에 가면 유럽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이 어디든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를 바라볼 것이다. 아이의 영역을 지켜주고, 나는 나의 세상에서 느슨하게 내 일을 해나가며.
작품 <하루빛> 정우재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