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만 아는 고통, 나만 알아서 생긴 고통

동생을 보내고

by 실버라이닝

아들을 임신하고 6개월쯤 되었을 때,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생기 발랄한 어린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그림책을 보고 있었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어르신들은 조용히 신문을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에세이집과 교육서적을 들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읽던 중이었어요.


갑자기 숨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앉아 있어서 아기가 눌려 그런가 보다 하고 잠깐 일어나 심호흡을 하고 다시 앉았어요.

하지만 숨은 더 가빠지기 시작했고 몇 분 이내에 저는 데스크로 달려 나가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전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숨쉬기가 힘들었습니다.


도서관 직원분은 저를 당직실로 안내해주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누워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몇 분간 저는 제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막상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닥치니 슬픔이나 회한보다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서 죽기 전에 가족들을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게 된다면 그들과 아주 소소한 일상을 살고 싶다는 생각.



구급차가 도착하고 대원들이 저를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황당한 일이 생깁니다.

제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죠.


저는 숨이 차서 말도 못 할 지경이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

맥박도 호흡도 산소포화도도 정상이랍니다.

이거야말로 미칠 노릇이었죠.

순간,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공황장애


많은 연예인들이 이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고백해서 잘 알려진 병.

증상에 대해 들어봐서 짐작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제가 직접 겪으니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구급대원들은 저에게 임신부이니 일단 병원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일단 집으로 가서 쉬었다가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전집에 간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괜찮아졌지요.


실로 무서운 경험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아무런 증상이 없어 또 금방 잊고 살았습니다.

그땐 그 증상이 정말 공황장애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냥 임신 중 오는 가벼운 스트레스 증상이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약 1년 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후,

리듬체조를 다니던 딸이 큰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들을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딸을 응원하러 용인에 있는 체육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짐이 많아 차로 가면 좋았겠지만 동생의 사고 후 운전대만 잡으면 동생 생각이 나서 한동안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좌석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외출해서 기분이 좋은 딸과 나란히 앉아 창밖 풍경을 보았습니다.

대회라 떨리기도 했지만 엄마와의 데이트가 신난다는 딸.


그런데 갑자기 딱 1년 전 도서관에서 느꼈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호흡이 빨라지고 뒷목이 저릿해져 오더니 식은땀이 났습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순간, 얼른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습니다.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근처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증상을 모른 채 들떠 있는 딸의 얼굴을 보며 차마 벨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창 밖을 보며 먼 산을 응시했습니다.

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몸은 지금 괜찮다고 주문을 걸었습니다.


30분만 참으면 돼. 곧 지나갈 거야.


시계를 보며 5분, 10분, 20분. 호흡에 집중하며 숨을 천천히 쉬려고 노력했습니다.

25분쯤 지나자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었지만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버스는 딱 맞춰 체육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휴대폰으로 '공황장애'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제 증상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기는 싫었습니다.

오랫동안 신경과 약을 드시는 바람에 신장이 망가져서 벌써 20년째 신장투석을 받으시는 엄마의 영향이 컸습니다.

저는 양약을 매우 싫어했고 그중 특히 신장에 많은 악영향을 끼치는 신경계 쪽 약은 절대 먹지 않으리라 다짐해왔습니다.


대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와 남편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아프다고.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그 일이 있고 또 2년쯤 후,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챙긴 후 남편과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증상의 강도가 심해 곧바로 구급차를 부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오신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건넌방에 계신 엄마를 부를 힘도 없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 한 알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약을 먹고 약 10분 후 저는 호흡을 되찾았았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할까,

아니면 상담을 받아 볼까.


동생이 사고로 죽은 후 주위에선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했지만 겁이 났습니다.

꽉 잠가둔 수도꼭지를 열게 될까 봐요.


지금도 또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마음의 수도꼭지를 여전히 꽉 잠가두고 사는 저를 보게 됩니다.

꼭지가 열리면 제가 얼마나 어떻게 울게 될지 모르겠어요.


낯선 의사 선생님이나 상담사분 앞에서 펑펑 울 제 모습을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어차피 제 문제는 해결방법도 없는데

약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자는 방법을 택하기는 싫었습니다.


병원이나 상담소를 찾아가는 대신

저 스스로 저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색을 하는 모든 시간이 저를 사랑하는 시간이 되어 줄 거라고 믿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제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화가 날 땐 화가 난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힘들 땐 혼자만의 시간을 달라고요.



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모습, 특히 아픈 부분을 숨기고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언론과 팬들이 있다면 연예인이 아닌 우리에겐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고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참고 지나가는 고통들이 많습니다. 연예인들은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언론에 공황장애가 있음을 알립니다. 그것이 바로 증상 치유의 첫걸음임을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가족과 주변 친구들에게 그 증상이 있음을 말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가끔 저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공황장애는 표면적으로 증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본인만이 그 고통을 알 뿐이죠. 막연히 죽을 것 같다는 생각. 자신만 겪는 그 고통은 사실 자신 혼자 참아왔던 마음의 고통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작고 잦은 타격으로 받은 상처나 크게 한방 먹은 상처 모두 상처받은 이에게는 공황장애라는 병을 가져다줍니다. 저는 가끔 심장이 너무 아파 주먹으로 때리는 적도 있습니다. 아주 세게 쳐서 제 손으로 맞는 고통이 더 크면 조금 기분이 나아집니다. 동생의 사고로 너무 놀란 심장이 가끔 헛구역질을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삐끗한 발이 비만 오면 시리고 저린 것처럼.


지금 내가 겪는 나만 아는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나만 혼자 참고 지나가는 일들을 줄였으면 합니다. 저 역시 그러려고 노력 중이고요. 가족들에게 욕먹는 게 참 싫었던 저인데 요즘은 욕먹는 순간을 참는 게 공황장애 증상을 참는 거 보단 낫겠다 생각합니다.


미움받을 용기


전 그 책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그 제목만큼은 깊이 와닿았습니다. 공황장애 증상을 겪는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인 것 같아요. 아프고 괴로운 일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사고로 동생을 잃기도 하고 혹은 남편과 이혼을 하기도 하고. 매일의 육아로 자유를 빼앗긴 일상의 고통은 또 어떤가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만은 고통들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를 더 신경 쓰는 분들이 이 고통을 숨기고 타인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순간 공황장애가 찾아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 더해 욕먹을 객기를 장착했으면 합니다.


저는 재작년부터 일 년에 한 번 저 혼자만의 1박 2일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편찮으신 친정엄마를 모시고 살아서 괜히 눈치가 보였지만 욕먹을 객기를 장착하고 무조건 다녀오겠노라 했습니다. 1박 2일 동안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오롯이 나 자신으로 하루를 사는 그 시간이 1년을 살게 합니다.


공황장애를 병원 진료와 약으로 치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만의 방법을 택했고 현재 그렇게 치유 중입니다. 감기를 약으로도 치료하지만 면역력을 키워 스스로 이겨내듯이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나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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