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형제가 몇이세요?

동생을 보내고

by 실버라이닝

새로운 곳에서 이웃을 사귀면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종종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형제가 몇이세요?

집에서 몇 째세요?


그냥 사소한 대화 중 툭 튀어나오는 질문일 뿐

묻는 사람도

어떤 의도나 큰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건 아닌데

하필 저 같은 사람에게 걸려서

의도치 않게 머쓱해지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여동생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죽었어요.


라는 단어를 고르기까지도 몇 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라고 말끝을 흐리면

듣는 사람이 그저 알아서 해석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부터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교통사고가 나서 먼저 하늘나라로 갔어요.


라고 조금 순화해서 표현하다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죽었어요.


라는 표현이 입에서 나옵니다.

가볍게 던진 질문에 걷잡을 수 없이 어두워진 대화에

당황하는 사람에게

저는 한 마디 또 덧붙여야 합니다.


조카 둘이랑 제부까지 넷이 한꺼번에요.


그리고 더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기 위해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를 꺼냅니다.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사이에서

난감해하는 상대방을 위해

보통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씩씩해하지만

아주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동생이 죽고 첫 해는 모든 날이 힘들었습니다.

동생이 죽은 날이 7월 28일 한 여름이었으니까

그 후로 처음 찾아오는

동생이 없는 추석, 내 생일, 크리스마스, 12월 31일, 신정, 구정, 엄마 생신, 아이들 입학식, 봄,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남편 생일, 아이들 생일, 여름방학식,

그리고 다시 기일

모든 날이 힘들었습니다.


동생이 있었다면 채워 줬을 그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데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행복하게 웃어야 하는 날들이 힘들었어요.


슬픈 일이 있던 날보다

즐겁고 축하할 일이 있는 날이 더 외롭고 보고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기뻐해 줬을 한 명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남아있는 가족들의 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당면했던 또 다른 일

바로

형제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동생을 보내고 다음 해

엄마와 함께 살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6살 된 딸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과 금방 친해져

자주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을 보내고 처음으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형제가 몇이세요?

집에서 몇 째세요?


.........


갑자기 식은땀이 났습니다.


동생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긴 싫었습니다.

동생의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이 있었는데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래서 여기로 엄마와 함께 이사 왔어요..


어떻게 말을 이어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에 묻혀

잘 전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엄마들의 표정을 보니 잘 전달되었나 봅니다.


엄마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제 손을 잡아주며 얼마나 힘들었냐고

우리가 앞으로 잘 챙겨주겠노라고

언니 동생처럼 잘 지내자고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그 질문을 종종 받았습니다.

어떤 날은 저도 모르게


네 없어요. 외동딸이에요.


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머, 되게 첫째 같았는데 외동딸이셨구나. 왠지 동생이 있을 것 같았어요.


라고 말하며 동생의 존재를 부정하고 거짓말한 저를

반성하게 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이 복잡했습니다.


이제라도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할까.


그렇게 끝까지 알고 지낸 사람들도 있고

나중에 사실을 전하게 된 경우도 있고

주변엔 제 동생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반

모르는 사람이 반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엄마가 유방암 수술로 입원하셨을 때에도

옆 침대에 누워 계신 분이 저를 보며 물으셨습니다.


딸 하나예요? 다른 형제는 없고?


저와 눈이 마주친 엄마가 자연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네 딸 하나예요.


방금 만난 사람, 며칠 후면 헤어질 사람에게

굳이 동생 사연을 말할 필요가 없으니

엄마의 대답이 당연한데도

엄마와 저는 그 순간 여전히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가끔 재혼한 친구 생각이 납니다.

딸 둘을 낳고 총각과 결혼한 친구는

동네 엄마들이 딸들보고 아빠랑 빼다 박았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그들은 사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혼자만 오만 잡생각이 든다면서요.


하지만 이제 그녀도 자연스럽게


네. 아빠 많이 닮았죠?


라고 한다고 합니다.


편하게 건네는 인사이니

편하게 받아줘야죠.


하지만 진실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생은 분명히 이 세상에 있었고

저와 즐거운 추억이 많았습니다.


동생을 보내고 10년,

지금은 겨우 동생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10년쯤 더 지나면

동생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요?




문득,

제가 대학생이고 동생이 고3일 때

수학을 어려워하던 동생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주다가

하도 못 풀어서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동생은 오히려 화를 버럭 내며


아 진짜 짜증 나. 왜 수학인데 영어를 해야 돼?

인테그랄이 뭐야 도대체 팩토리얼은 뭐고?


한심한 동생에게 제가 물었더랬습니다.


너 도대체 내신 몇 등급이야?


동생은 고민하며 대답했습니다.


지금 몇 등급까지 있지? 15등급인가? 아 그럼 14등급쯤 될 거야.


공부를 못해도 참 당당했던 아이.

저보다 공부만 못했지 뭐든 자신감이 넘쳤던 그 아이는

늘 저보고 손이 많이 가는 언니라고 핀잔을 주었었지요.


지금도 동네에서 손 많이 가는 언니로 유명한데


이 글을 쓰는 순간 눈물이 많이 쏟아지는 걸 보니

아직 지인들이 동생 이야기를 할 때

제 에피소드는 꺼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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