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상이 보내는 응원

동생을 보내고

by 실버라이닝


죽고 싶다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조용히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제가 아는 한 젊은 남자도 만삭이었던 아내에게 다정하게 출근 인사를 하고는 옥상에 올라가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자살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해서' 오는 무기력 때문임을 동생이 죽고 일 년쯤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슬픔을 참는 데에 온갖 힘을 썼기에 무기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삶이 원래의 궤도에 들어서고 남들과 비슷한 일상을 살기 시작하자 문득 '나는 왜 사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나 차 안에 있을 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이 한 번에 방안의 불 꺼지듯 탁 하고 꺼졌으면 좋겠다고.

갑자기 전쟁이 나서 한 번에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누가 나를 죽여서 빠른 시간에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엄마이자 딸, 그리고 아내이기에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매일


내가 왜 사는지

하나님은 왜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치는지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지

그냥 대충 살다 죽어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딘가 마음 정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삶의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제 눈치만 보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상의해 둘째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신기하게 바로 임신이 되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기뻤습니다. 딸아이는 너무 좋아하며 이 아이는 분명 남자아이일 테니 죽은 동생들이라고 생각하고 잘 키우자는 말까지 했습니다. 입덧이 심했지만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정에 더 충실히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신 21주 차에 2차 정밀 초음파를 하러 갔던 날, 의사는 다급히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아이와 산모인 제가 모두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던 연약한 아이가 자궁에서 흘러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결국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남편과 저는 별걸 다 겪어본다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지켜보던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다시 무기력해지고 이전보다 더 우울해질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생각보다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큰 아픔을 이미 겪어 본 사람에게 이 정도 아픔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퇴원하는 날 저는 남편에게 다시 둘째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미쳤냐고 그런 말이 나오냐고 했습니다.



실은 유산을 하기 며칠 전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제 팔에 안겼는데 갑자기 파닥거리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실망한 저에게 바로 다른 한 마리가 다시 안겼습니다. 저는 그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잡고 있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산을 하고 병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는데 병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산모 한 분이 저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제게 그분은 대뜸 꼭 둘째를 임신할 테니 희망을 가지라고, 그렇게 유산하면 더 잘생긴다며 축복 아닌 축복을 해주고 갔습니다. 갑자기 며칠 전 꾼 꿈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속에서 막연한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제 인생에 대한 오기이자
행복을 향한 강한 욕구였습니다.




첫째 때 먹지 않았던 엽산에 한약까지 챙겨 먹으며 6개월 후 드디어 다시 임신을 했습니다. 2차 정밀 초음파를 하던 날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출산하는 날까지도 아이가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열 달 후 건강한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가 며칠 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행복합니다.





9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이 저를 응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꿈속에서 응원을 보내기도 했고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꼭 임신이 될 거예요.




그날 그 말이 저에겐 이렇게 들렸습니다.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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