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지막 인사

동생을 보내고

by 실버라이닝


장례를 다 치르고 나니 제가 시체가 되어 조용히 누워 있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죽고 동생이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살아서 이 고통을 겪을 동생을 생각하니 ‘아니지, 그래도 내가 이걸 겪는 게 낫지’ 하고 생각합니다.



집에 돌아온 첫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동생과 가족이 현관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왜 안 들어오고 거기 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잠깐, 너네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어머 아닌가? 아니구나! 죽은 거 아니구나!”



하며 신이 나서 동생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자기가 죽은 게 맞다고 합니다.




저는 울면서 조카들을 한참 동안 끌어안았습니다. 폭 안기던 느낌이 너무 진짜 같아서 깨어나서도 한동안 그 온기가 제 몸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꿈속에서 저는 정말 죽은 거냐고 묻고 동생은 죽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면 현관문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갑자기 ‘언니’하며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핸드폰도 쳐다보기 싫었습니다. 다시는 동생의 이름이 뜨지 않을 전화기였습니다. 한 번만 동생과 통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토록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통화를 하고 밥을 먹고 안아보고 싶었습니다. 잘 가라고. 내 동생으로 와줘서 고마웠다고…





중학교 때부터 편찮으셨던 아빠는 제가 대학교 3학년, 그리고 동생이 고3일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빠 병원비를 대느라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저는 과외를 4개씩 했고 동생은 갈빗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래도 태생이 낙천적이었던 저희 자매는 늘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곧이어 엄마도 신장이 나빠져 투석을 시작하셨고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서로를 의지해 직장생활을 하고 빚을 갚아가며 결국 둘 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자매이자 동료이고 전우였습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때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가끔 행복한 순간에 한없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너무 행복해하면 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장례 이후 한동안 동생 꿈을 꾸다가 웬일로 제부가 꿈에 나왔습니다. 제가 동생네 집에 있는데 제부가 들어오더니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거래처 가는 길인데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싶어서 왔다 길래 저는 일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어쩌냐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서 그래도 꿈속에서 본 제부 얼굴이 밝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제부의 누나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날은 함께 동생네 집을 정리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거실 바닥엔 개다 만 빨래들이 있었고 제 남편이 아이들 영정사진을 위해 찾아본 듯한 앨범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아이들의 흔적을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알고 지내던 중고책 사장님께 아이들 책만 전달해드렸습니다. 깔끔했던 동생은 옷 정리도 물건 정리도 참 잘해놓았습니다. 계절별로 정리된 어른 옷과 아이 옷들 가운데 아직 입어 보지 못한 옷가지들이 보였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준다던 선물이 편지와 함께 그대로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번만 빌려 달래도 안된다며 아끼던 비싼 코트도 가지런히 걸려 있었습니다. 물건을 매만지다가 울다가 만지다가 울다가 그렇게 방과 화장실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부엌을 정리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냉장고 문을 연 저는 또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냉장고에는 어젯밤 꿈속에서 제부가 찾으러 왔던 맥주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제부가 하늘나라로 가는 길에 이 맥주가 한 모금 마시고 싶었나 봐요’ 하고는 제부의 누나와 함께 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현실에서 나누지 못한 마지막 인사는 저희에게만큼이나 죽은 동생과 제부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동생과 제부가 꿈에 나타나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정말 현실을 떠돌거나 좋은 곳으로 가는 건지, 그럼 동생과 제부는, 또 조카들은 어디로 가게 된 건지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곳에 잘 도착했다고, 그 말 한마디만 들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세월은 흘렀습니다.




이전 03화#3 목숨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