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보내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TV 뉴스에서는 연일 동생의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늘 같았습니다.
[교통사고로 일가족 4명 사망]
어떻게 알았는지 수시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들이 연락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법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은 남편과 제부 쪽 어른들이 함께 만나 일을 처리해 주고 저에게 중간중간 알려주었습니다. 장례에 관한 일들을 처리하고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제 머릿속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제 안의 슬픔을 채 느낄 새도 없이 네 명의 시신을 확인하고, 염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동생과 제부와 조카 두 명, 네 번의 화장을 마치기까지 저는 서로를 고모, 이모라고 부르는 제부의 누나와 함께 가족의 대표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서류에 사인을 했습니다.
제부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납니다.
동생보다 한 살 어렸던 제부는 덩치가 크고 듬직했던 외모와 달리 세심하고 다정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푹 빠졌던 남자였습니다. 거래처 직원이었던 제부와 알게 되고 단 며칠 만에 서로 눈빛이 통해 사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동생이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동네 술집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드디어 그 주인공을 보겠구나 설렜습니다.
보자마자 어찌나 생글생글 웃던지 내 동생이 참 좋은 남자를 만났구나 싶었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인사를 넙죽하더니 작은 선물을 건넸습니다. 예쁜 머리핀이었습니다. 순수하고 다정한 선물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 동생의 남편이 되고 제 아이의 이모부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든든했습니다. 결혼하고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제부는 제 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주었고 저에게 늘 다정한 남동생이 되어 주었습니다. 워낙 서글서글해서 온 가족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장례를 다 치를 즈음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보상금 문제였습니다.
예전엔 보상금 문제로 가족이 싸운다는 뉴스를 접하면 굉장히 비인간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돈이 대수냐며. 그런데 제가 겪고 보니 보상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 제 가족의 목숨이었고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죄 없는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그것마저 받지 못하면 그 죽음이 헛되고 소리 없이 공중분해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동생은 이 세상에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법적인 문제는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니 알아서 잘 진행되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법이 해줄 수 없는, 아니 법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었습니다.
동생의 가족이 시댁으로 가던 날, 고속도로 어느 톨게이트 근처였습니다, 동생네 차는 서 있었는데 옆 차선의 차를 피하려던 고속버스가 가만히 있던 동생네 차를 덮친 사고였습니다. 네 명의 가족은 두 대의 엠블런스에 실려 두 곳의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중요한 건 사망시각이었습니다.
보상금은 유산으로 취급되어 지급되는데 마지막 사망자가 누구냐에 따라 제부 쪽으로 전부 다 지급되거나 저희에게 나누어 주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부계사회가 지배하는 법에 의하면 제부가 마지막 사망자일 경우 모든 보상금은 제부의 부모님에게 지급됩니다. 조카 중 한 명이 마지막 사망자인 경우 양가 조부모님께 나눠 지급됩니다. 동생이 마지막 사망자인 경우에 아이들 몫은 제부 쪽으로 동생 몫만 저희 쪽으로 지급됩니다. 제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는데 대략 이런 식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엄마는 만약 1번의 경우라면 우리는 어쩌면 좋냐며 내 새끼 죽은 값도 한 푼도 못 받고 억울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억울한 마음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로가 돈으로 환산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냥 모든 것이 허무했습니다.
목숨에 우선 순위가 어디 있으며 남자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따질 곳도 없었습니다. 그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룻밤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동생과 가족은 동시에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사망 확인을 몇 시로 확인하고 '선고'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사망 확인도 두 병원에서 두 의사에게 따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음날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큰 조카의 사망시각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목숨을 붙들고 있었을 2살 배기 큰 조카의 모습이 떠올라 또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서로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잘 살라고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같았습니다. 동생이 아픈 엄마 병원비 하라고 주는 것 같았습니다. 조카딸 용돈 주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옷 잘 안 사 입는다고 언니 예쁜 옷 좀 사 입으라고 잔소리하던 동생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은 이제 없었습니다. 보상금이 동생이었습니다. 이 돈을 저와 엄마는 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