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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Oct 01. 2024

가지가지 한 날

콩깍지

좋아하는 훌라 샘 '가지(별칭)'의 월요일 정규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



이미 쿠무(훌라스승)께 한 번 배웠지만 아직 몸에 익숙지 않은 곡, '바닷가의 집'을 가르치신다길래 주저 없이 신청했지. 게다가 운 좋게 내가 근무하지 않는 요일에 수업을 여셨더라고! 데스티니!



한국어 번역으로 '바닷가의 집'인  이 곡은 하와이어로는 'Ka Nohona Pili Kai'라고 부르는데  바닷가에서 살았던 시절을 그리며 부르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노래야. 무뚝뚝한 내 남편도 내 핸드폰에서 이 곡이 흘러나오면 '나 이 노래 좋더라'라고 말하더라고.



가지님은 내가 훌라를 시작하고 봐온 훌라샘들 중 유난히 마음이 가던 분이었어. 춤선과 미소에 더해 그녀가 훌라 외에 하는 일들이 자기장처럼 나비모양을 하고 있었고 나는 점점 그곳으로 끌리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운명처럼 내가 좋아하는 곡인데 잘 못해서 더 연습하고 싶었던 바로 그 곡을 가르쳐주신다는데 알 갈 수가 있냐 이 말이지.



나도 훌라지도자 과정 1급을 마쳤기 때문에 같은 훌라선생님인데 왜 다른 선생님께 수업을 듣느냐고 묻는다면, 그래 난 아직 교생 선생님 같아서 말이야. 아직 더 많은 선생님들의 수업을 보고 그들의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 공간에서 수강생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배워야 하거든.





역시나 가지님의 수업은, 좋았어. 소문에 꽤 힘들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힘든 건지 궁금했거든. 일단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안녕하세요, 하고 가사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신 후 곧바로 스텝연습에 들어갔어. 일반적으로 일상대화를 나누다가 천천히 시작하거든. 가지님은 수업으로 곧바로 직진하셨는데 사실 나도 그게 좋았어. '훌라를 추려고 만났으니 훌라를 춥시다'하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래, 어차피 훌라가 곧 이야기니까.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눈빛과 목소리,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그녀의 '한번 더, 카홀로, 오왼오왼오왼오'. 스텝 연습이 끝나고 곧바로 1절로 들어갔어. 농담 한 마디 없이 진지하게 곡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설명들이 마냥 재미있기만 하고, '다시 해볼게요'를 무한 반복하는 목소리마저 아름다웠던 건 아마 가지님을 보는 내 눈에 콩깍지가 가득 씌워져 있어서 인 것 같아.  



수업이 끝나고 오늘 어떠셨냐는 질문에 어떤 분은 '늘 그렇듯이 마냥 즐거웠어요'라고 했고, 처음 훌라를 배운 분은 '너무 어려웠어요'라고도 대답했어. 가지님은 '어려운데 즐거운 게 제일 좋은 거래요.' 하셨지. 맞아. 내가 그랬어. 어려웠지, 하지만 즐거웠어. 그래, 어렵다가 즐겁다가. 다시 즐겁다가 어렵다가. 즐거운데 어렵다가 어렵지만 즐겁다가. 어렵기만 했다가 즐겁기만 했다가 그렇게 하다가 내 몸에 훌라가 깊고 진하게 무르익는 날이 올 것 같아. 내 훌라가 푹 익는 날이 오면 내 별칭도 바꿀까 봐. 묵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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