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진짜더라고요.
훌라를 시작하고 처음 전면 거울 앞에 섰던 날, 너무 어색해서 자꾸 고개를 숙여 땅을 보거나 옆사람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많이 어색하시죠? 우리가 살면서 사실 자기 자신을 이렇게 바라보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훌라 출 때만큼은 많이 바라봐주고 자신을 예뻐해 주세요."
처음엔 거울을 보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한 시간 넘게 훌라를 추고 나니 어색하기만 했던 거울 속의 내가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멋있기까지 했다. 자기 연민을 맴돌던 나를 향한 시선이 자기애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고 한 곡을 끝까지 출 수 있게 된 어느 날 주말 저녁, 가족을 거실로 불러 모았다.
"모여봐요, 내가 오늘 배운 거 춰볼게."
가족들은 비웃음 반 기대 반으로 소파에 주르륵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워낙 이것저것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훌라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도 반응이 시큰둥했던 가족들이었다.
"뭐, 또, 이번엔 훌라야?"
특히 남편이 내가 훌라를 배우기 시작하고 큰 기대 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잘 배운다며 조금씩 궁금해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동작이야 여전히 서툴렀지만 어쨌든 완곡을 했고 연습할 때처럼 행복하게 추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고 바라본 가족들의 얼굴은 기대 이상이었다. 모두 끝까지 진지하게 바라봐주었을 뿐 아니라 누구 하나 비웃거나 장난치지 않고 박수를 쳐주며 말했다.
"잘 추네? 훌라가 원래 이렇게 행복한 춤이었나?"
행복한 춤. 내 춤에서 그걸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내가 느낀 게 전해졌구나. 가족들은 그 후로 내가 훌라 수업에 가는 시간을 소중히 대해 주었다. 수업에 빠지지 않도록 외출 중에도 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게 배려해 주었고 훌라에 대한 나의 진심에 함께 그들의 진심을 더해 주었다.
시동생네 가족과 함께 여름에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날 밤, 남편이 먼저 훌라 이야기를 꺼냈다.
"야, 얘 요즘 훌라 추는 거 알아? 정은아, 한 번 보여줘 봐."
판을 깔아주면 나야 신나니까. 망설임 없이 늘 들고 다니던 파우를 꺼내 그때 배우고 있던 "My Little Grass Shack"을 추었다. 시동생과 동서도 별 기대 없이 웃으며 보다가 끝까지 진지하게 집중하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누나가 (시동생과는 워낙 어려서부터 가족처럼 지내서 아직도 나를 누나라고 부른다) 너무 행복해 보여서 좋다. 훌라를 추기 시작하니까 얼굴이 변하는데? 웃는 게 엄청 자연스러워!"
내가 훌라 추는 영상을 보고 나를 오랫동안 보아 온 친한 동생은 이렇게 표현했다.
"뭐야? 뭔데 이렇게 찰떡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참이다. 찰떡. 나는 원래 나이 45에 훌라를 추기로 인생이 세팅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듯 오랫동안 거부해 왔지만 나는 훌라를 추어야 행복해지는 사람이었던 게다.
그리고 최근 나를 아껴주고 지지해 주는 한 분이 나에게 해 준 말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분이 내가 훌라를 추는 이유를 확실히 알려주었다.
"선생님, 얼마 전에 선생님 훌라 추시는 영상을 제가 봤는데요, 선생님이 '진짜'로 웃으시더라고요. 그 웃음은 '진짜'더라고요."
그렇다. 나는 훌라를 출 때 '진짜'로 웃는다. 이거라면, 내가 훌라를 추면 안 되는 이유가 오조 오억 개 정도 있어도 나는 훌라를 추어야 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