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간을 잡아, 훌라로이드
크고 작은 일을 겪을 때마다 산 정상에서 심해 밑바닥까지 순식간에 감정의 기복을 경험했다. '기가 세다, 예민하다, 똘끼가 있다'와 같은 말로 일축되곤 했던 나의 성향에 대해 말띠라서, B형이라서, 전갈자리라서, ENFP라서,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여자로 태어난 사주라서라는 말까지 다양한 분석과 평가를 들어왔다. 심지어 한 철학관에서는 '나중에 정신병원에 갈 확률이 높은 사주이니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며 둥글게 살라'고 경고했고, 집 앞 무당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굳이 '남자를 10명 이상 만나야 평탄하게 살 수 있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면, 그래서 내가 그 운명의 해류를 잘 타고 갔다면, 저 멀리 큰 대양으로 갈 수 있었을까? 혹시 내가 해류를 벗어나 다른 바다에 갔거나 한 눈 팔고 멈춰 있어서 상어에 물리고 해파리에 쏘였던 건 아닐까? 나의 타고난 기질과 운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한 번은 어떻게든 중간고사 노트처럼 간결 명확하게 정리하고 시험을 치르고 정답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 달과 별의 에너지, 핏속에 새겨져 뇌와 심장을 지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의 기질들이 40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만든 새로운 정답지도 궁금했다.
정답지를 확인한 후 오답노트를 쓰고 싶어서 사람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나보다. 혹여 인생에 대한 기출문제가 나와 있지는 않은지 교회나 절을 찾아가 신과 종교인들에게 묻기도 한다. 철학관이나 무당을 찾아가 몰래 예상문제와 답을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어느 곳에서도 나의 타고난 기질과 삶의 방향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알려주지 못했다. 정답지는 결국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오답노트가 아닌 정답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 써 내려간 정답노트는 적어도 내가 어떤 해류를 타고 가는지, 물의 온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한동안 글과 그림으로 정답노트를 쓰던 중, 어느 날 훌라가 찾아왔다. 훌라는 나에게서 나를 분리해 낼 뿐 아니라 시간을 멈추게 하는 마법을 경험하게 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처럼, 삶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했다. 일시정지. 그때, 고통과 슬픔은 순식간에 얼음처럼 냉각했고 행복이 나비처럼 노랗게 날개를 펄럭였다. 나비효과. 슬픔과 고통을 잠재우고 조용히 펄럭이는 행복의 날갯짓은 내 삶에 커다란 태풍을 불러왔다. 어떤 기질을 타고났든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나비의 날갯짓에 한눈 팔리는 순간이 행복하고 다시 일시정지가 풀어져서 내 인생의 고통이 플레이되어도 괜찮았다. 나비가 불러온 허리케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행복한 꽃잎들이 공중에 여전히 날리고 있었다. 여운은 오래갔다. 훌라의 비트가 일상에서 깊고 낮은음으로 계속 울리고 있었다. 꽃잎들이 가라앉을 무렵 나는 다시 훌라는 추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