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춤
퇴고를 하던 어느 날 아침, 눈이 왔다.
아이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고 좋아했고 나는 훌라를 추어야겠다며 옷을 챙겼다.
"지금이야! 정말로 눈밭에서 훌라를 추는 거야!"
흰 눈은 아름답기도 했고 차가웠고 조용했다. 삶의 고통은 그렇게 찾아온다. 우리 곁에 조용히 시리게 찾아오지만 아름답다. 눈 밭에 서자 발은 시렸지만 내 몸은 더욱 뜨거워졌다.
한 여름 더위 남태평양의 뜨거운 햇볕 아래 모래사장을 밟는 마음 그대로 눈을 밟았다. 발바닥과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지는 만큼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순간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내 안의 강인함이 차올랐다.
'훌라'는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이다. 나는 이날 내가 쓴 글을 몸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글로 써 나갔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Y.A. 무슨 소용이죠, 쓴다는 것이?
M.D. 침묵인 동시에 말하는 것이지. 쓴다는 것, 그건 때로는 노래하는 걸 뜻하기도 해.
Y.A. 춤추는 건요?
M.D. 그것도 되지. 그건 개인의 상태지. 춤추는 것 말이야. 난 춤추는 걸 아주 좋아했어.
Y.A. 왜요?
M.D. 아직 모르겠어.
<이게 다예요> 중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나도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훌라 추는 걸 아주 좋아하고 그게 '나'를 표현하는 것이며 곧 '나'를 쓰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쓴다는 건' '침묵인 동시에 말하는 것'이자 '노래하는 것' 혹은 '춤추는 것'이라는 뒤라스의 글처럼 나에게는 이 모든 행위가 다 똑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