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에게 현타가 올 때

우선순위 새로고침

by 실버라이닝

나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보내면 처음엔 왠지 속이 시원하고 ‘그래, 이거야!’ 하며 자신감이 넘쳤다. 아이가 좋아하는 ‘젠가’라는 이름의 블록 탑 쌓기 놀이처럼 나를 위해 하나씩 나무 블록을 올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엄마가 많이 편찮으시거나 아이들이 별 것 아닌 일에 예민해져 눈물을 뚝뚝 흘리면 금방 마음이 약해졌다. ‘내가 가족들과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이런 걸까?’ 자책감이 고개를 들고 갑자기 인생의 우선순위 리스트를 조절하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 놓은 블록놀이의 탑을 부수고 다시 쌓듯 하던 일을 멈추고 가족들을 돌보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내 존재가 물 위에 그린 수채화처럼 옅어지면 나를 또렷이 그려내러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래놓고는 가족에 대한 염려가 고개를 들어 일을 멈추기를 반복했다.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하는 그 시간들이 올 때마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인생의 우선순위를 매번 새로고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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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카페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출간 기일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퇴고를 하는 중이었다. 마침 둘째 아이의 미술 선생님이 지나가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이 걱정을 하셨다.


“요즘 아이가 별일 아닌 거에 잘 울고 예민해요. 답답하다는 말도 자주 하고요. 무슨 일이 있나요?”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그런가 봐요.’ 하고 말씀을 드렸지만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여지없이 내가 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주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다시,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탔다. 잠시 쓰던 글을 멈췄다.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았다.


엄마로서의 나는 언제나 두 가지 옵션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여기서 노트북을 닫고 집으로 가서 아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엄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 오늘 하루 가족이 조금 더 평화롭고 화목하겠지만 내 존재가 다시 흐려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지나 온 그 길을 다시 걸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노트북을 닫지 않고 처음 계획한 대로 글을 쓰고 갈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아들과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문득,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딸과 이렇게 힘든 시기가 있을 때마다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딸이 운동을 하느라 힘들고 동생이 생겨 외로웠던 그 시간,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고 싶어 새벽이나 밤에 둘만의 데이트 산책을 하곤 했었다. 내 마음이 닿았는지 아니면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지금 딸은 누구보다 밝고 나를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아이가 되어 있다. 그 믿음으로 아들에게도 다가간다면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오늘 내가 할 일을 정했으니 이제 잡념은 떨치고 다시 아까 쓰던 글을 이어 써야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때마침 아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엄마, 방금 내가 방금 만든 눈사람이야!"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기로 한 엄마가 카페에 나가 글을 쓰고 있으니 혼자라도 나가서 만든 눈사람인데 처량해 보이지 않고 귀여워서 다행이다. 자세히 보니 아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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