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물이 나죠?

훌라의 비밀

by 실버라이닝

요즘 짧은 영상에 핫한 음악을 배경으로 나의 이야기를 녹여내는 ‘릴스’라는 콘텐츠가 인기다. 옷이나 신발 유행은 못 따라가도 온라인 콘텐츠 유행만큼은 얼리어답터이고 싶은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릴스챌린지’ 모임에 참여했다. 릴스 책을 낸 강사님은 포스부터 남달랐다.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다가 ‘릴스’에 관한 책을 쓰고 릴스마케팅과 다양한 온라인콘텐츠 강의로 전국을 다니고 있었다. 챌린지 모임에 함께한 멤버들의 경력도 눈이 부셨다. 청년 농부부터 10년의 도전 끝에 교사가 된 분, 친환경 업사이클링 주얼리대표, 정리정돈으로 콘텐츠를 살린 대표님들까지 나이도 이력도 다양했다.


3주간의 챌린지를 마치고 마지막 날 오프모임에 초대받았다. 강사님은 참여자들에게 ‘세바시’ 느낌의 5분 강의를 제안했다. 챌린지 참여자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원한다면 강의를 준비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영어이야기가 아닌 훌라 이야기로 참여를 희망하고 신청서를 보냈다. 5분 강의 중에 2분 정도 짧은 이야기를 준비하고 3분 동안은 훌라를 추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열심히 사는 참가자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시간을 준비하고 싶었다.


오프 모임 당일, 10년 동안 10번의 임용고시를 도전한 분의 이야기는 모임 참가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자신과 주변사람들, 나아가 지구를 생각하는 친환경 오일 이야기를 들을 땐 반성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SNS에 매일 좋을 글귀를 올려주는 작가님의 책사랑 이야기를 들는 동안엔 그녀의 모든 표현에 공감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빔 프로젝트 화면에 ‘슬플 땐 슬퍼하고 춤출 땐 춤만 춘다 – 안젤라’라는 화면이 떴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렘과 떨림, 긴장과 기쁨이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참가자분들이 내 이야기를 좋아해 줄지, 내 훌라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재빨리 훌라치마로 갈아입고 머리에 꽃핀을 꽂은 후 사람들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닉네임 안젤라, 박정은입니다. 그동안 영어이야기는 많이 했으니까요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참가자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여동생과 동생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이야기부터 둘째를 21주에 유산했던 이야기, 엄마의 암선고 후 1년, 최근 다시 재발한 암으로 인해 치열하게 항암 간병을 하고 있는 이야기를 차분히 이야기했다.


“그런데 진짜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였다. 동생이 죽고, 아이를 유산했지만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이 다 빠졌지만 여전히 우린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동생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로 쓰며 매일 울었다. 눈물에 마음의 고름이 섞여 나왔고 덕분에 초록색이었던 내 삶에서 파란 셀로판지가 벗겨져 나갔다. 남은 자리엔 온통 밝은 노랑이 드러났다. 아이를 유산하고 꿈을 꾸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내 손에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에서 툭 떨어졌고 나는 그 물고기를 손에서 놓쳐버렸다. 다시 길을 가는데 한 마리가 내 손으로 들어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물고기를 잡고 있다가 꿈에서 깼다. 꿈을 꾼 다음 날 남편에게 다시 임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6개월 동안 운동을 하고 보약을 챙겨 먹은 후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한 날 나는 확신했다. 행복할 수 있다고. 행복하겠노라고. 엄마가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입원 전날마다 보건소에 가서 같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맛집에 가서 보양식을 먹었다. 우리는 그 루틴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훌라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엄마의 간병 사이사이에 짬짬이 훌라를 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훌라를 출 때만큼은 나로 존재했고 그 순간에 살았다.


슬픔의 시간을 경제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를 영리하고 건조하게 계산적으로 취하기로 했다. 슬픔 스위치 오프, 행복 스위치 온. 온 앤 오프를 잘해야 내가 슬픔에 압도당하지 않고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슬픔 스위치가 올라가 있는 한 행복 스위치는 켜지지 않는다. ‘크리스티앙 보뱅’이 그의 책 [가벼운 마음] 첫 페이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늑대 떼처럼 몰려오는 슬픔에 내 목을 무기력하게 내어줘서는 안 된다. 물릴 땐 물리더라도 늑대의 입을 떼어내고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야 살 수 있다. 눈밭의 기수처럼 행복을 향해 앞으로 전진해야 시뻘건 피를 흘리며 눈 위에서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삶을 피할 수 있다.



짧은 강의를 마치고 훌라를 추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요즘 가장 행복할 때가 훌라를 출 때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도 아니고 춤이 너무 좋아서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훌라를 출 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더라고 짧게 이야기하고 평소 훌라를 출 때처럼 허리를 세우고 음악의 첫 소절을 기다렸다.


우쿨렐레 반주에 맞춘 하와이 음악이 시작되고 나의 손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느라 덜덜 떨리던 손은 어느새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편하게 파도를 따라 강의실 안을 일렁였다. 두 팔이 양쪽으로 쭉 뻗었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커다란 하와이의 달을 그렸다. 입가에 번진 미소는 이미 얼굴을 가득 채운 지 오래였다.


음악에 푹 빠져 어느새 한 소절이 끝나갈 즈음에야 앞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눈가에 고인 눈물이 보였다. 처음엔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해서 귀엽게 깔깔깔 웃던 분들이 어느새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지막 소절을 부르며 두 손끝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가사를 전하고 수줍게 짧은 공연을 마쳤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강사님이 '우리도 같이 추면 안될까요? 그냥 따라 해볼게요. 한 번만 다시 춰주세요.'하고 부탁했다.


앙코르 아닌 앙코르 부탁에 다시 추었다. 나야 또 추면 좋았다. 추면 출수록 행복한 훌라가 아니던가! 내가 배운 그대로 가사를 한 박자 미리 읊어주며 추었다.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다 같이 함께 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들의 미소를. 내가 처음 훌라를 신청할 때 내 마음을 움직였던 훌라 선생님의 미소가 참여자들의 얼굴에 번져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다시 나를 보았다.


‘아, 이 분들 모두 행복하고 싶구나! 그리고 지금 행복하구나! 나처럼!’


세바시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내 곁에 세 분이 다가왔다. 소맷자락 끝으로 눈물을 콕콕 찍으시더니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너무 아름다웠어요. 보는데 마음속에 이상한 게 울컥하고 올라오더라고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왜 눈물이 날까요? 왜 눈물이 나죠?”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나도 잘 모른다는 것.


“저도 그랬어요. 처음 훌라 추는 모습을 보았을 때 목구멍에 이상한 게 올라왔어요. 그런데 저도 아직 그게 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뭔가가 있다는 거, 눈물이 나는 그 마음은 저도 알겠어요. 아직은,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어요. 좀 더 추어보면 언젠가는 알겠죠? 그날까지 계속 추려고요.”


잘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것이 훌라뿐일까? 하루종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춘기 아이의 마음이 그렇고 은퇴를 번복하는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변덕이 그렇다. 매년 올해는 간단하게 하자면서 상이 부러지게 추석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손이 그렇고 매일 때려치운다고 하면서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 많은 직장인들의 뒷모습이 그렇다. 논리적으로 딱 부러지게 설명은 못하겠는데 이해가 된다.


훌라 추는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훌라 아이템 하나 살 때마다 훌라 추는 기간이 1년씩 연장된다는 것이다. 훌라를 배운 지 9개월 차인 내가 어느새 치마와 꽃핀까지 합쳐 아이템 10개가 되었으니 이미 10년은 확보했다. 거기에 그날 모임 참가자들이 보여준 눈물은 나에게 20년 이상의 가치가 있었으니 나는 앞으로 최소한 30년은 더 훌라를 추게 될 것 같다. 75세. 그때쯤이면 내가 원하는 ‘훌라 추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고 훌라가 왜 좋은지, 훌라를 보면 왜 눈물이 나는지 조곤조곤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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