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데 능숙해진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후 엄마가 없는 방을 둘째 방으로 꾸몄다. 그동안 아들의 공간이 없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누나와 함께 쓰던 방을 고등학생이 된 누나에게 양보하고 거실을 자기 방 삼아 지냈지만 늘 이 방 저 방을 배회하는 녀석이 안쓰러웠다. 몇 번 이사도 고민했지만 결론은 늘 이곳에 그대로 사는 것이었다. 엄마가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랬다. 남편과 나는 암암리에 엄마의 죽음을 전제하고 있었다.
침대와 책상은 새 거니까 그대로 쓰기로 하고, 새 옷장을 하나 샀다. 책과 레고, 보드게임까지 거실에 있던 아들의 물건들을 전부 방으로 들이니 제법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 방 같다. 엄마가 좋아하던 연분홍 잔꽃 무늬 면 커튼 대신 회색 블라인드를 걸고, 그 옆에 파란 불이 들어오는 지구본을 놓았다. 아들의 물건들이 방에 가득한 죽음을 감싸 안고, 한쪽 면을 채운 초록 벽지는 생동감 있는 일상을 예고했다.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내가 아무렇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은 크고 깊었다. 병간호의 시간도, 호스피스 병동의 밤들도, 마지막 작별의 장례식도 모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방을 꾸몄고, 아들의 웃음을 보며 안심했고, 금세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그런 내 마음이 무서웠다.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닐까.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전에 이 감정들을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는 걸.
내 안에 이미 그 슬픔을 견뎌본 기억이 있다는 걸.
동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모든 건 갑작스러웠다. 그날 새벽의 모기, 전화, 그리고 장례식장 계단. 모든 게 순식간이었고, 충격적이었고, 나를 압도하는 슬픔에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던 기억. 내가 아끼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빨리 배웠다.
온 마음이 갈가리 찢기고 피가 났고, 삶은 뒤틀렸다. 잘 살아야 할지 대충 살아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다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내던 시간. 다시는 아무 일도 평범하지 않을 것 같았고 동시에 제발 평범하기를 바랐다. 매일 울면서 살았고 웃으면서 죽어갔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돌이켜보니 그때 나를 끌고 간 건 일상이라는 관성의 힘이었다. 일하러 가야 했고, 밥을 먹어야 했고, 생일과 추석과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했을 뿐. 동생을 떠나보냈을 때의 마음이, 엄마의 죽음 앞에서 다시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훨씬 능숙하게 조용히 방을 정리하고, 블라인드를 달고, 아이에게 미소 지으며 슬픔의 허들을 넘었다. 슬픔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 살아내는 법이 내 몸에 남았다. 비극의 무게를 견디는 근육이 나도 모르게 생겨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동생이 잊힌 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숙이 스며 있다. 그들은 나의 말투 속에,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손끝에, 어떤 선택의 망설이는 눈빛 속에 매일 살아 있다. 엄마에게 배운 다정함을 아이에게 건네고, 동생이 좋아하던 갈빗집이 여전히 있는 걸 보며 반가워한다. 그 순간마다 나는 두 사람을 동시에 그리워한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동생과 엄마를 애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