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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선택

엄마를 위한 건줄 알았는데

by 실버라이닝

유방암 2.5기. 엄마의 암이 이미 림프에도 두세 개 발견되었다. 예후는 좋지 않았다. 수술은 어렵고, 항암 필수, 방사선도 필수.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건 투석 환자이기에 수분흡수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약에 물을 희석해 연하게 쓰기 힘들어 여러 부작용이 더 강하게 올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면역력과 나이까지 염려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진료실을 나와 서로 잠시 말이 없었다. 차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현실적인 제안을 꺼냈다.


엄마, 암 수술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래. 주변에 보면 어르신들은 수술한 분과 수술하지 않은 분의 예후가 비슷하대. 오히려 암치료를 받느라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편하게 지내가 돌아가시는 것도 방법인 것도 같아. 하지만 엄마 몸이니까 엄마가 정해야지. 나는 둘 다 상관없어. 엄마가 힘들지 않은 쪽으로.


말로는 엄마가 힘들지 않은 쪽이라고 했지만 사실 모두가 힘들지 않은 쪽을 선택해 주길 바랐다. 객관적으로 엄마의 항암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독감만 걸려도 건강한 분들보다 심하게 아프고 중환자실에 가기 일쑤였다. 일 년에도 수차례 응급실행에 여러 잔병치레로 입퇴원을 반복한 삶이었다.


이기적이게도 엄마 심경보다 항암 간병라이프의 그림이 그려졌다. 나는 또 엄마와 매일 신경정을 벌이겠지.아이들은 나와 할머니 눈치를 보며 방황할 것이고 그러다 억울하게 혼나는 날이 잦아질 것이었다. 아이들을 챙겨주고 싶어도 엄마의 컨디션이 먼저라 또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할 것이었다. 남편과 오해와 다툼의 소지가 생겨도 남편이든 나든 참고 조용히 지나가야 할 것이고 다툼도 해결도 나중에 기회 되면, 이라는 단어 아래로 무기한 덮어두어야 할 것이었다. 엄마는 과연 모두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바라는 결정을 내려줄까? 말없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나는 기대했다.


엄마는 마음이 정확하게 반반이라고 했다. 주변 경험자들의 조언도 반반.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수술을 안 한다고 종종 언급했지만 막상 닥치니 그렇게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듯했다. 혹시나, 암을 제거하면 몸이 깨끗해져서 오히려 이전보다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더 마음이 쏠리는 듯했다. 며칠 동안 엄마는 방에서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이 사람 저 사람과 통화했다. 주변에 시어머니가 항암을 받은 분이며 얼마 전에 항암 치료를 마친 분, 지난달에 돌아가셨던 암환자분까지 투석실 환자들과 보호자들 사이에 암 유경험자들이 즐비했다. 선명하게 죽을 날을 세는 것보다 희미하게 살고 싶었을까, 그렇게 며칠을 통화로 자료 조사를 마친 엄마는 결국 수술과 항암을 받겠다는 의중을 비쳤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결정이 속상했다.현실적으로 확률이 낮은 괴로운 치료를 굳이 왜 하려는지, 그 시간을 그렇게 힘겹게 보내야 하는 지. 기약없는 간병 속 엄마는 더 가늘어질 것이고 고통의 농도는 진해질 텐데. 다가올 시간이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엄마의 결정이 원망스러웠다. 딸의 그런 속내를 알아차리면 엄마가 얼마나 소름이 끼쳤을까 싶어 눈빛부터 숨소리까지 조심하며 엄마에게 잘 했다고, 힘든 결정 내렸다고 우리 화이팅하자고 힘을 붇돋아주는 내 자신이 가증스러웠다.


엄마의 암이 재발한 그 다음 해 우린 또 같은 대화를 나누고 엄마는 다시 항암을 택했다. 그리고 엄마를 보낸 지 1년이 지난 지금, 엄마가 내 곁에 머물러 준 그 몇 개월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이제야 안다. 그때 엄마의 결정이 얼마나 용기 있는 선택이었는지.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혹시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딸인 나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던 그 마음까지. 항암 선택 덕분에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여러번 나눌 수 있었고, 나는 매일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팠지만 함께였던 그 시간이, 결국 내 마음에 가장 따뜻하게 남았다.


엄마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더 함께 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엄마는 끝까지 삶을 사랑했고, 끝까지 나를 사랑했다.


그때 그렇게 결정해 줘서,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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