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향

괜찮을 줄 알았는데

by 실버라이닝

후련하고 자유로울 거라고 분명 자신했었는데 그를 보내고 아쉬움과 외로움이 나를 뒤흔들었다. 같은 실수를 하는 반복하는 사람과 매번 용서해 주던 사랑. 사람에게 사랑이 이별을 고하니 그제야 알게 된 마음을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사랑이 용서의 연료라서 그랬다는 걸. 바보같이 재고를 확인하지 않은 채 야금야금 사랑을 다 써버렸다는 걸. 마지막 남은 한 방울로 미련까지 다 태워버리고 홀연히 사랑이 떠난 후 남은 건 텅 빈 연료탱크 안을 휘도는 바람 소리뿐이라는 걸. 이건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


물고기는 물속이 답답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을까. 물의 압력과 산소의 농도 같은 것에 대해 투정을 부린다거나. 그의 관심과 배려가 나를 누르고 숨 쉴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날 넣어 둔 어항이 자꾸 좁아지는 것 같고. 그래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한 번씩 숨을 쉬는 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던 걸까. 어항 밖으로 뛰쳐나와 마주한 진실은 잔인했다. 물을 그리워하는 일도, 그토록 그리던 자유 속에서 다시 그를 찾는 일도.


그와 모기향 데이트를 하던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지난여름 밤들, 우리가 심어둔 체취가 증발하고 있었다. 젖은 풀들 사이로 모기향 냄새가 퍼져 나오고 어느 잎에 녹음된 우리의 대화가 재생되었다.


운동장 구령대 옆 계단에 나란히 앉은 밤, 편의점에서 사 온 초록 모기향에 불을 붙이는 그의 팔뚝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남들보다 땀을 많이 흘려서 별명이 ‘아쿠아맨’이라며 농구할 때 수비수들이 기피한다는 농담에 내가 웃으면 3점 슛을 성공시킨 선수처럼 웃었다. 모기향의 재가 손가락 마디 간격으로 툭 떨어지면 그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찰싹, 종아리에 붙은 모기를 때리면 대화가 다시 도돌이표를 찍고 맨 처음으로 돌아갔는데. 도란도란, 별일도 아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제야 하루의 문이 조용히 닫히던 곳. 그땐 그랬다. 세상 어딘가에서 아이가 계속 태어나면 이 세상은 언제 끝나냐는 다섯 살 아이의 질문처럼, 우리 사랑도 자꾸 태어나서 결코 끝나지 않을 줄만 알았다.


그를 만나지 않으니 도무지 끝나지 않는 하루. 오늘 밤도 여전히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내내 밤, 또 밤일 텐데.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모기향이 코끝을 스치고 그의 땀 냄새를 떠올린다. 부재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능력이 있을까. 오래전 지나간 향기가 남아 있을 리가 없는데. 살갗을 뚫고 스며든 향기가 혈관을 돌다가 그를 기억하고 묻는다.


지금, 그는 어디 있냐고. 앞으로 그가 떠오를 여름 밤들을 어쩔 셈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