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뭉게구름

유모차 안의 아이처럼 순수하기를

by 실버라이닝







아이들은 정말이지 구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쩌면 아기일 때 유모차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돌아다니다 보니, 구름과 끈끈한 친밀감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알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가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을 엄마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p26, 개빈 프레터피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라.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p11 <구름감상협회 선언문> 중에서




사진: Unsplash의Billy Huynh


달리기를 시작할 때나 중간에 걸을 때 자연스럽게 하늘을 보게 된다. 하늘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나는 달리다가 숨이 턱에 차서 힘이 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이다. 숨을 헐떡이는 나에게 하늘은 맑고 긴 숨을 보내준다. 그러니 잘 달리는 날보다 못 달리는 날 하늘이 더 필요하다. 하늘은 말수는 적지만 사려 깊은 친구이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달리면 새파란 하늘을 보는 날도 많지만 보통은 구름이 늘 함께 한다. 오늘은 달리기를 마치고 '뭉게구름'이라고 불리는 '적운'이 가득한 하늘과 만났다. 모든 어린이들의 그림 속에 피어있는 뭉게구름을 맘껏 감상하며 나 또한 어린 시절 얼마나 구름을 좋아했는지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합창단에 들어갔다. 합창 대회를 위해 한동안 수업 후에 매일 모여서 연습을 했다. 가을에 대회가 있었는지 내 기억 속 연습시간은 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맴맴 매미소리를 들으며 학교로 합창 연습을 하러 가던 중이었다. 여름방학 중에 연습을 하러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는지 키 큰 가로수들이 늘어선 아스팔트 한쪽을 걷는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도 가도 무더웠던 길. 걷다가 너무 더워서 땀을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었다. 확률상 뭉게구름이 자주 생기기는 어려우니 아마 내가 다른 구름들은 다 잊어버리고 뭉게구름만 기억 속에 쏙쏙 넣어놓았는지 모르겠다. 그 날도 새파란 하늘에 하얀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한 구름이 너무 예뻐서 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매미 소리는 규칙적으로 들려왔고 나는 한동안 뭉게구름을 그저 바라보았다.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오후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과학 선생님이 지루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교실 제일 왼쪽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뭉게구름을 다시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합창연습을 가던 길에 만났던 그 구름이었다. 그때 그 매미소리도 똑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할 뻔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의 시선을 확인한 후 책을 읽는 척하며 다시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깨닫다니. 하지만 그런 것도 잊은 채 내가 구름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 만으로 너무나 가슴이 벅찼다.



공기의 대류 현상으로 바람이 불고 구름을 움직이게 한다는 기계적인 이론을 드디어 수업시간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한 채 무심코 하늘을 바라본 10분 동안 깨달았다는 사실이 묘하게 짜릿했다. "구름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답답한 교실에 앉아 교과서를 읽는 대신 우리는 구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라고 멋지게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최소한 남은 수업시간 동안 구름을 관찰한 동기는 충분히 부여받았다. 그날부터였을까. 나는 구름을 관찰하는 시간은 철학과 과학과 문학을 위한 시간이라고 자신 있게 합리화했다.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시간에 대해 깨닫게 해 준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바로 구름이었다.



어린 시절 유모차 안에서 손가락을 빨던 우리에게 파란 도화지에 하얀 물감으로 구름이 그려준 토끼와 강아지와 양들을 우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컴퓨터가 아닌 우리 손이 그리는 그림은 어느 하나 똑같을 수 없고 자연에 있는 모든 존재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듯 구름도 어느 하나 똑같을 수 없겠지만 우리는 누구 솜씨인지 한 번에 알아보는 것이다. 그때 그 구름의 필력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와 고등학생이던 때 만난 그 친구를 40대 중반인 요즘 달리기를 하며 다시 만났고 나는 한 번에 알아보았다. 너구나! 그때 그 뭉게구름!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인 남편은 죽었다 깨도 나의 이런 감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구름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마치 부모님께 내 어린 시절 오랜 동창생을 소개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그 동창생은 예술성을 가득 품은 화가이자 소설가이자 음악가이다. 나의 순수함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일상을 아름답게 회복시켜 줄 능력자이다. 그런 녀석을 다시 만났으니 이상주의자인 내가 얼마나 든든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다가 가끔 유모차를 밀고 가는 다정한 젊은 부부를 본다. 유모차 속 아이는 구름이 주는 '덧없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산책을 즐긴다. 예전엔 알지 못했던 그 찰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가 알아보는 건 모두 다시 만난 뭉게구름 덕분이다. 그리고 그 구름을 다시 천천히 바라볼 여유를 준건 바로 나의 숨을 헐떡이게 한 달리기이다.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덧없다. 하지만 그 덧없는 아름다움이 주는 기시감을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순수해지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이처럼 모든 순간에 놀라고 감동하고 즐길 수 있게 된다.



매일매일 유모차 속 아이처럼 '덧없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운동화 끈을 당긴다.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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