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화해하기
은유 작가님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글을 쓰러 오는 사람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상처를 한 보따리 지고 온다'라고 했는데 나는 달리러 나갈 때 크고 작은 울분을 손에 들고 간다.
처음 달리기를 하러 나온 날 어린 시절에 보았던 만화 '달려라 하니'가 떠올랐다. 5분 정도 달리고 속도를 올려 미친 듯이 달렸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울분이 터져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니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발바닥이 땅을 박찰 때마다 이유 없이 슬프고 답답했던 감정들이 건드려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왜! 네가 뭔데! 내가 어때서! 나 좀 내버려 둬!'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울분을 토해내며 달렸다. 마치 압력밥솥에서 첫 김을 빼듯이 치직! 치직! 하고 그간 쌓인 분한 마음을 내보냈다. 그땐 내가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우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몇 달을 달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운명'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모르겠어.
-[서시] 중에서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받아들였던 힘든 시간들이 내 몸속에 켜켜이 쌓여있다가 달리기를 하며 하나씩 녹아 나오는 듯했다. 어느 날은 어린 시절의 불안한 기억이, 어느 날은 대학 시절의 외로움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꿈은 우리가 스치듯 우연히 보고 들은 모든 자료가 뇌세포에 남아 있다가 잠을 자는 동안 건드려져서 보이는 거라고 했던가. 달리는 동안 내 몸세포에 있는 여러 감정들이 꿈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아빠가 간경화와 뇌졸중으로 고생하시다가 대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시고 엄마는 신장 투석을 시작하셨다.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 11년, 엄마는 암투병 중이시다. 항암 3차를 마치고 퇴원한 엄마는 뇌에 종양이 더 커졌다는 말을 듣고 아이처럼 울었다. 힘들게 치료받으면 뭐 하냐고. 투석에 항암에 방사선까지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밥도 먹기 싫다고.
나는 엄마의 눈물을 엄마처럼 닦아주며 엄마를 달랬다. 너무 힘들면 치료 그만하자고. 나이 드신 분들은 암이 천천히 진행된다고 하니 우리 남은 날들 더 아프지 말자고. 일단 밥을 먹자고. 밥맛 없으면 오랜만에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엄마는 아이처럼 눈물을 닦으며 라면을 먹겠다고 했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울 때 끝없이 달리던 하니가 또 생각났다. 나 역시 달리고 싶었다. 달리면 계속 달리면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이 답답함이 풀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달렸다. 요즘은 운명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그냥 운명이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몇 개월간 화를 낼 만큼 냈기 때문인 듯도 하다. 덕분에 한강의 시처럼 '한없이 고요해'지는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운명'을 순순히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춤을 출 때 춤만 춘다. 잠을 잘 때는 잠만 잔다. 그리고 아름다운 과수원을 홀로 거닐다가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게 되면 곧 내 생각을 바로잡아 다시 그 과수원에서의 산책으로, 그 고독의 감미로움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돌려놓는다.
-[몽테뉴의 수상록] p65
달리며 알 수 없는 울분을 다 토해내니 조금씩 풍경이 보인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커플과 유모차를 밀며 걷는 어린 부부가 예쁘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은 사랑스럽고 프로 러너처럼 차려입고 질주하는 사람들은 멋지다.
원인은 있으나 해결방법이 없고 단지 시간이 흘러야 하는 일들에 대해 조금씩 받아들인다. 슬플 때만 슬퍼하기로 한다. 춤을 출 때는 춤만 추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자고 달릴 땐 그저 달리기로 한다.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