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낀 날도 좋아

날씨는 먹구름, 기후는 온대

by 실버라이닝

이란에서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나, 운이 좋은 사람을 보면 '데이엠 세마쿰 가임'이라고 말한다. 번역하면 '네 하늘은 언제나 구름으로 가득할 거야'라는 뜻이다. 몇 달 동안 주야장천 맑고 파란 하늘만 펼쳐지는 나라에서는 햇살 가득 화창한 것이 전혀 특별할 것이 없고, '파란 하늘주의'가 좋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런 나라에서는 구름이야말로 소중한 비가 오리라는 반가운 징조이며, 이글거리는 태양을 가려줄 축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p107




나는 새파랗게 맑은 하늘도 좋지만 구름 낀 하늘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우울할 때 '먹구름이 끼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구름이 얼마나 멋진데! 내가 본 구름의 매력을 이란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게다.



사실 먹구름이 낀 날보다 더 좋아하는 날이 있다. 바로 비 오는 날이다. 안개비든 장대비든 비 오는 날은 무조건 좋다. 가장 먼저 기분이 좋아지는 건 비 냄새 때문이다. 천둥이 치기 전에 번개가 번쩍 하듯, (대략 번개가 번쩍하고 약 6초쯤 후에 천둥소리가 들린다고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들은 듯하다) 비가 오기 전에 풍기는 비 냄새를 맡는다. 물비린내에 섞인 흙냄새. 나는 후각에 예민한 편이 아닌데 유독 비냄새에만 민감하다. 자다가도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물비린내를 맡으면 곧 비가 오겠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옷이 젖어서 싫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옷이 젖는 것쯤은 괜찮다. 오히려 젖은 옷을 말리는 시간,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뽀송한 옷을 입는 순간이 더 좋아서 그 순간의 기쁨을 알게 해주는 비가 더 좋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오르던 등산의 시간 덕분에 하산의 기쁨이 커지듯 말이다. 신체가 겪는 약간의 고통은 언제나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비 오는 날의 찝찝함도 나에겐 그중 하나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한 친구가 정신과 환자들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며 상담을 받아보라고 농담을 건넨다. 비 오는 날 정신병원 병동에 가보면 환자들이 다들 흥분된 상태로 복도에 나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나는 비 오는 날 기분이 약간 업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사실 날씨가 맑은 날엔 다들 너무 행복해 보여서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먹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날엔 다들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딘지 모르게 패배주의적인 냄새가 풍기는 대목이다. 고백한다. 나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10대와 20대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주눅이 들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보낸 젊은 시절이 맑은 날보다 어두운 날을 더 반기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4월에 유독 남들이 행복해 보여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도 하던데, 나에게 날씨가 딱 그렇다. 맑은 날엔 다들 원하는 곳에 가서 원하는 일을 하는데 나 혼자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하기 싫은 곳에서 하기 싫은 일을 했던 기억이 나로 하여금 맑은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만들었지 싶다.



비 오는 날엔 다들 예정되었던 스케줄을 취소하고 집으로 가거나 급한 대로 상황에 맞춰 간소하게 일을 처리했던 기억들이 나에게 ‘비 오는 날은 삶에 공평한 상황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런 게 놀부심보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못하면 남도 못했으면 좋겠는 것. 날씨가 맑으면 남들이 즐거울까 봐. 다 같이 우울하게 먹구름이 끼거나 비 오는 날을 함께 겪었으면 좋겠는 것.



그런데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먹구름은 내 인생에만 낀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365일 중 맑은 며칠을 볼 뿐이다. 그들의 먹구름 낀 날과 비 오는 날, 천둥번개가 치던 날은 보지 못한 채 맑은 날의 모습만 보고 그날 내 인생의 먹구름을 비관하는 것이다. 문득, 나의 맑은 날을 보며 가슴 아파했을지 모를 먹구름 낀 날의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좁은 지역에서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나는 대기의 상태가 날씨라면, 더 넓은 지역, 긴 기간의 상태에서 볼 수 있는 기록이 기후가 될 것이다. 내 인생의 날씨는 맑았다 흐렸다 뒤죽박죽이지만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기후는 온대성이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 덕에 온대삶에 적합한 무수한 열매들이 맺어져 있는 것을!



달릴 시간이 애매해서 한낮에 달리기를 하다 보면 이란만큼은 아니겠지만 태양의 뜨거움에 놀라곤 한다. 아주 잠깐이어도 먹구름이 나타나서 햇빛을 가려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맑은 날이 계속되는 것은 사람을 바짝 말려버리거나 그의 인생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날들이 지속되면 인생은 열대기후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우리 삶에는 분명 맑은 날 만큼 먹구름 낀 날과 비 오는 날이 필요하다. 다만 그날들에 어떻게 적응하고 얼마나 감사하며 살 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이란이 아닌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 나는 맑은 날도 먹구름이 낀 날도, 그리고 물론 비 오는 날도 좋아하기로 한다. 그런 날들의 연속 덕분에 내 인생이 온대기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선보다 곡선, Hu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