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 공연 첫 데뷔의 날을 기억하며
무한도전도 개그콘서트도 막을 내린 마당에 나를 한 시간 이상 웃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훌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늘 긴장도가 높고 걱정이 많은데 그걸 보이고 싶어 하지 않다 보니 마음에도 없는 실없는 소리를 하다가 가끔 실수도 하고 나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기 일쑤였다. 그리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다 보니 눈동자는 계속 굴러가고 표정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나의 마음속에는 늘 긴장을 풀고 편하게 웃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술자리와 목욕탕을 좋아하는 듯하다.
훌라의 첫 수업 역시 편하지만은 않았다. 전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왠지 낯부끄러웠다. 핸드폰 셀카로 얼굴만 찍던 것과 달리 전신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남이 나를 이렇게 보고 있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나 자신을 보기만 하는 것도 어색한데 춤이라니. 그것도 살랑살랑 아름답게 추는 춤. 과연 나는 이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첫 스텝이 시작되었다.
발을 움직이고 손 모양을 따라 해본다. 훌라 핸즈는 마치 파도를 따라 움직이듯 넘실거려야 하는데 힘을 빼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힘을 빼는 동작마저 힘을 주며 빼려고 하니 누가 봐도 로봇춤이 따로 없다. 그런데 훌라선배 여구르르님이 예쁘다고 잘한다고 해준다. 훌라는 웃으면 일단 잘 추는 거라고 못 추면 그냥 웃으면 된단다.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보였다. 내가 웃는 모습을 타인의 시선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전신거울 덕에 나는 처음으로 나를 따로 떼어 놓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훌라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밉거나 어색하지 않고 마냥 사랑스러웠다. 경직되어 있던 나의 뇌가 보이지 않는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후~ 하고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첫 수업 날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웃었나 보다. 그렇게 수업시간마다 웃고 또 웃고 훌라를 시작한 지 6개월쯤 되던 어느 날 드디어 가장 많이 웃는 날이 찾아왔다.
훌라를 시작하고 맞이하는 첫 데뷔무대였다. 이렇게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훌라공연을 하게 되다니 설레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돌덩이 하나가 있었다. 엄마의 컨디션이 문제였다. 작년에 항암치료를 마치고 1년 만에 암이 재발해서 온몸으로 전이되고 있는 엄마는 최근 다시 항암을 시작했다. 확실히 작년보다 체력이 많이 달리고 힘들어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엄마는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편이심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힘들고 결과가 썩 좋지 않다 보니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공연이 있기 바로 전 날에도 엄마는 다 내려놓고 싶다며 식사도 거부한 채 아이처럼 울었다. 엄마가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이 훌라공연도 걱정되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엄마를 두고 훌라파티에 가는 게 맞나. 가서 신나게 훌라를 추는 게 맞나. 내가 가서 과연 웃을 수 있을까?
공연 날 아침까지도 눈치만 보다가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맡은 책임이 있어서 공연만 얼른 하고 올게요.
엄마는 다행히 가서 잘하고 오라고 웃으며 대답해 주셨다. 그 웃음 덕에 나는 미안함을 조금 털어내고 더 씩씩하게 잘하고 오겠노라 다짐할 수 있었다. 막상 공연에 가는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이 났다. 첫 훌라수업에 가던 그 지하철 안에서의 기분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뭐라고 인사를 나눌까? 끝나고 나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오랜만에 가는 홍대도 설레고 공연이 있을 '하와이킴'에 들어서자 알로하의 기운이 나를 하와이로 데려다주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알로하'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하와이킴'의 건물 옥상 루프탑은 이제 더 이상 홍대가 아닌 와이키키였다.
그날의 주인공이자 와이키키 훌라클럽의 리더 '여구르르'님의 인사로 '와이키키훌라클럽'의 첫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조금 떨리고 긴장되긴 했지만 긍정적이고 행복한 긴장이었다.
틀려도 돼. 망쳐도 좋아, 웃으면 되니까!
드디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30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손끝이 덜덜 떨렸음에도 신기하게 억지웃음이 아니라 기분 좋은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웃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야지 다짐을 하며 왔는데 저절로 지어지는 웃음에 행복이 차올랐다. 음악 소리가 왠지 더 크게 느껴지고 어렸을 적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놀던 생각이 났다. 그때처럼 파도에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 나만의 바다에서 다시 홍대 루프탑 공연장으로 돌아오니 관객들이 함께 떼창으로 우리가 추는 곡을 불러주고 있었다.
Hanalei, Hanalei moon
Is lighting beloved Kauai
하나레이, 하나레이의 달빛
사랑스러운 카우아이를 비추고 있어요
Hanalei, Hanalei moon
Aloha no wau iã 'oe
하나레이, 하나레이의 달빛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그 순간부터 나는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와 함께 추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들의 손과 발은 보이지 않게 파도 위를 넘실대고 있었다. 마치 함께 노를 저어가며 부르듯 우리는 그렇게 박자를 맞춰가며 노래하고 훌라를 추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미소가 미소를 타고 흘러 다녔다. 입에서 입으로 눈에서 눈으로 손에서 손으로.
나에게 훌라는 그토록 아름다운 곡선이다. 파도의 곡선, 우리 몸의 곡선. 그리고 경직된 직선의 마음을 구부려 만드는 마음의 곡선. 직선이었던 내 입에도 곡선이 생긴다.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의 컨디션을 살폈다. 엄마는 아직도 어지럽고 기운이 없긴 하지만 아까보다는 좀 나아졌다고 했다. 공연은 잘하고 온 거냐고,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내 걱정도 덧붙이셨다. 나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를 달래며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를 대하는 내 마음도 직선에서 곡선으로 부드럽게 구부러진 덕분이다.
훌라핸즈에 힘을 빼려면 몇십 년이 걸린다는데 내 마음이 파도처럼 부드러운 곡선이 될 때쯤 나도 우아하게 힘을 빼고 출 수 있을 것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더 부드러운 미소를 장착하고 말이다. 그때까지 훌라를 추고 싶다. 나를 일자로 만드는 많은 걱정과 고민을 부드럽게 훌라로 구부리며 살 테다.
2023.10.15 와이키키훌라클럽 첫돌을 기념하며,
10년, 20년 후까지 매년 생일파티마다 브런치에 축하의 글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