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몸과 마음의 관절을 아낍니다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큰 의미를 두고 '꺾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나쁜 사건-개인의 불행이나 세계의 비극-을 겪는 순간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는 덜 늙고서도 늙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보내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몸의 관절이 오래 쓰여 닳듯, 마음도 닳는다. 그러니 '100세 인생'은 무참한 말일뿐이다. 사람에게는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이 없다.
-[시와 산책] 한정원, P67
원래 46이지만 윤정부 나이로 44세인 올해, 유난히 나이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간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더욱 그러하다. 젊고 생기발랄한 청년들 사이에서 유독 늙어 보이는 내 모습이 싫을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에 인바디를 측정하는데 46이라는 숫자가 유난히 거슬렸다. 트레이너 선생님께 윤정부 나이로 44이니 수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그러면 인바디 점수가 더 낮아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점수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했다. 그저 45보다 작은 숫자가 보이기만을 바랐다. 46이라는 숫자는 50에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50이 되면 나는 아무리 젊게 산다 해도 스스로를 더 이상 젊음이라는 단어 안에 끼워 넣지 못할 것만 같다. 지금 50살인 인생선배님들이 들으면 기분 상할 소리이지만 나는 50이 되는 순간, 늙어감을 인정해야 할 것만 같다.
이십 대에서 서른으로 꺾일 때에는 마음에 큰 동요가 없었다. 하지만 마흔이 될 때 한번 크게 흔들렸다. 일단 몸이 여기저기 이유없이 많이 아팠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 지속될 뿐인데도 하루 종일 피곤했다. 37살에 낳은 아이의 뒤늦은 육아도 원인 중 하나였을 수 있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잠도 잘 자고 무척 유순한 편이라 육아에서 오는 피로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그냥 몸에서 호르몬의 변화가 온다고, 늙어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40살 즈음, 늘 문제였던 자궁에 자꾸만 용종이 생겼다. 한 번은 의사가 심각하게 검사를 해보자고 했는데 결과가 나오는 일주일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지만 아주 짧게나마 병과 죽음에 대한 상상을 해볼 수 있었다.
늘 아팠던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가장 끔찍한 게 '아픈 노년의 삶'이다. 제발! 나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 늙는 것은 막지 못한다 해도 건강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40대가 되고 건강한 노년의 삶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잘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등산이며 달리기, 훌라처럼 다양한 취미를 시작하며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했다.
관절은 사용량이 정해져 있어서 다 써버리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운동을 하며 몸의 근육을 키우면 관절을 덜 쓸 수 있기 때문에 노년이 되어 관절문제로 고생하는 일을 줄여줄 수 있다. 마음은 어떨까? 작가의 말처럼 마음도 관절처럼 조금씩 닳아간다면 지금부터 몸을 관리하듯 마음도 관리해주어야 할 것이다. 100세 시대에 100년 동안 쓸 마음이 없다면 남은 노년기간 나는 어쩌면 텅 빈 상자 같은 마음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가진 마음을 천천히 잘 사용하기 위해 나는 달리며 사색하는 것을 택했다. 근육을 키워 관절을 보호해 주듯, 마음의 근육을 키워 마음의 관절을 천천히 오래 사용해야 하니까.
달리기 덕분에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어 감사하다. 달릴 수 있는 몸에게 감사하고, 달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허락되는 것에 감사하다. 달릴수록 심폐기능은 올라가고 근육은 단단해진다. 관절을 덜 쓰고 몸은 건강해진다. 건강한 노년의 삶이 조금씩 길어진다. 달리면서 느끼는 ‘runner’s high’ 덕분에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땀에 섞여 나오는 분비물 속에는 분명 마음의 찌꺼기가 잔뜩 들어있다. 압력밥솥의 김이 빠지듯 분노와 짜증이 새어 나온다. 달린 후에 마음에 근육이 붙는 것이 느껴진다. 달린 만큼 나는 마음의 관절을 아낀다. 노년에 사용할 마음을 많이 남긴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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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노인의 뒤에 서서, 그에게는 위로로써 나에게는 격려로써 저 시구를 읊조렸다. 노인에게는 멈추는 힘이, 나에게는 나아가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노인의 등을 바라보고, 노인은 호수의 가슴을 바라본다.
-[시와 산책] 한정원, p68
우리 모두 온 마음을 다해 여기까지 오느라고 늙었고, 앞으로도 늙어갈 것이다. 다만 나는 그냥 늙고 싶지는 않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나아가다가 때가 되면 서서히 서행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관절을 아끼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그때 쓸 몸과 마음을 남겨두기 위해 오늘 이렇게 또 달리고 사색하고 웃을 것이다.
그때 내가 바라볼 호수의 가슴은 어떤 풍경일까?
내 곁에서 함께 호수의 가슴을 바라볼 이는 누구일까?